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한반도 浮沈<6508>

bindol 2022. 10. 10. 09:00

중국대륙의 서해안에 있는 상하이를 비롯, 대도시들의 지반이 한 해에 10㎜씩 침하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변이 없었다면 10년에 10㎝요, 1세기면 1m가 가라앉아왔다는 것이 되며, 양귀비가 살았던 당 현종시대에 비기면 무려 13m가 가라앉았다는 것이 된다. 이렇게 중국 서해안이 가라앉는 대신, 그 연쇄 역동 때문인지 한반도 서해안은 떠오르고 동해안은 가라앉아 왔다. 서해안인 군산에 밀물이 들어와 차는 해수 라인이 낮아지고 있다는 일전의 보도도 이 지각변동의 일환일 것이다.

통일신라 시대 경주의 외항은 동해안 율포(栗浦)였다. 신라 충신 박제상(朴堤上)이 인질로 잡혀 있는 왕의 아우를 빼돌리고자 일본을 떠났던 나루도 율포였다. 그 현장인 경주 양남면(陽南面) 하서리(下西里)에 가보면 나루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그 마을에 사는 노인들로부터 여덟 간 밖 바다 속에 방파제로 보이는 석축을 찾아볼 수 있다는 말만 들을 수 있었다. 율포는 가라앉은 나루가 돼버린 것이다. 미륵신앙의 본고장인 전라북도 익산 미륵사(彌勒寺)는 서해안 내륙 깊이 들어와 있다. 지금은 바다와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이 절을 창건했던 백제시대에는 미륵삼존(彌勒三尊)이 나타난 것으로 돼있는 이 절의 못에 바닷물이 드나들었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는 발굴보고가 있었다. 아마도 금강 하류의 부곡천을 타고 밀물이 이곳까지 들어왔던 것 같으며 '신통력으로 하룻밤에 메말라 육지가 됐다' 했는데 서해안이 떠올라 해수 유입이 멎었다는 것으로 풀이되고도 있다. 호남평야 내륙에 있는 삼국시대 축조물 벽골제(碧骨堤)는 저수(貯水)둑이 아니라 방파(防波)제라는 설이 유력한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 역사 동안 바다에서 광활한 평야가 떠올랐다는 것이 된다. 군산의 서해 돌출 부위가 오식도동인데, 지명이 말해주듯 20세기 후반만 해도 섬으로 바짓가랑이 걷고 걸어서 이를 수 있었던 뻘밭이 지금은 육지화된 것이다. 서해안 전체의 뻘밭띠가 넓은 이유도 땅이 바다에서 떠오르기 때문이다. 동북아시아의 지구학적 변동이 표출되고 있는 작금의 대륙붕 부침현상들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