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英雄犬

bindol 2022. 10. 11. 08:47

 

[이규태코너]英雄犬

조선일보
입력 2004.10.05 18:36
 
 
 
 

한강 둔치를 산책하면서 시청각이 쇠퇴하고 걸음걸이가 불편한 한 할머니를 앞장서 인도하는 애완견을 본 일이 있다. 할머니가 걸음을 멈추면 동시에 멎는 것이나 걸음의 느리고 빠름에 민감하게 동조하는 것이 마치 전파에 의해 조작되는 듯했다. 당뇨가 심해 실명한 요크셔테리어라 했다. 여느 그 많은 발걸음 소리에도 착각한 적이 없고 할머니가 걷다 다리를 삐어 멎으면 지켜서서 짖어대어 행인을 불러들인다 했다.
몇 년 전, 하와이 마우이섬에서 개가 끄는 휠체어를 타고 산책하던 반신불수의 노인 생각이 난다. 부유했던 이 미국 할머니는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손자들이 앞다투어 휠체어를 밀었으나 이들이 하나 둘 할머니 곁을 떠나간 뒤 생각해보니 한 자손 예외 없이 유산을 노린, 저의 있는 봉사였다고 했다. 지금은 아무런 사심도 없고 또 변심 없는 개와 여생을 편안하게 살고 있다면서 "누가 개자식(Son of bitch!)이라는 욕을 만들었는지 죽은 뒤라도 찾아가 취소시킬 것이다" 했다.

톨스토이는 동물이 사람보다 인도적이라는 평소의 소신을 실화로 수집, '동물 이야기'란 책을 냈다. 그 가운데 보브란 개는 불난 집에 뛰어들어가 소녀를 구하고 다시 뛰어들어 인형까지 구해내고 있다. 이 책이 나오자 보브의 주인이 톨스토이에게 "그 개는 소방관인 내가 직업용으로 훈련시킨 개입니다"라고 편지를 띄워 톨스토이의 취지를 약화시키긴 했지만….

고려 말 공민왕이 정3품의 품작을 내린 당상관 누렁이 개가 있었다. 당시 개성은 염병이 휩쓸고 가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이 누렁이가 살던 집도 눈먼 어린이 하나 남겨두고 온 식구가 몰살했다. 누렁이는 사고무친의 이 눈먼 아이 묶은 끈을 이끌고 이 집 저 집 동냥을 시켜 먹이고, 바가지 긁는 소리가 나면 샘터로 인도해 물을 먹여 길렀다.

정신병원 등을 돌아다니며 자폐증이나 정신박약 어린이들과 더불어 놀면서 재활을 도와온 한국 개 샌디가 세계 영웅견선발대회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 영웅견으로 선발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개가 그 나라 민족성을 따른다는 것은 과학인데, 개만도 못한 행동이 조야에서 빈발하고 있는 것이 새삼 안타깝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