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소금 뿌리는 까닭

bindol 2022. 10. 11. 08:49

[이규태코너]소금 뿌리는 까닭

조선일보
입력 2004.09.30 18:45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화 ‘최후의 만찬’ 가운데 배신자 유다 곁에 소금 그릇이 엎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유다가 그리스도와의 약속을 어기고 배신할 것이라는 것을 엎어져 나오는 소금으로 상징한 것이다. 소금은 기독교에서 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과의 불변의 약속을 상징하며 세례 때 소금을 썼던 때도 있었다. 회교도들도 소금을 더불어 먹음으로써 약속이나 계약의 신성을 보증받았다. 우리 조상들은 소금 뿌린 산실(産室)에서 태어났고 태어나 맨 먼저 소금을 먹이는 관행도 있었다. 소금이 액귀(厄鬼)나 병귀(病鬼)를 쫓는다고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태어나 자라면서 잠결에 오줌을 싸면 키를 둘러 씌우고 이웃에 소금 빌어 오라 조리를 돌렸다. 소금은 이처럼 버릇을 고치기도 했다.

그렇게 장성하여 시집 장가 갈 때면 가마바닥에 소금을 뿌려 신부를 앉히고 말 안장 아래 소금을 깔아 신랑을 앉혔다. 새 인생을 해코지하려는 귀신들을 물리쳤던 소금이기도 했다. 아이를 못 낳으면 소금으로 배꼽 뜸질을 하고 합방했다. 원인 모를 병에 걸리면 소금을 검은 보로 싸 이마에 대고 '쐬!쐬!쐬!' 세 번 하면 병귀가 도망가는 것으로 알았다. 전라도 해안지방에 가보면 무당굿의 제상에는 소금이 한 그릇 소복이 놓여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다가 초상을 당하면 관 속에 소금을 뿌려 주력(呪力)으로 연관된 세상과의 고리를 끊고 떠나갔고 떠나보낸 사람은 그렇게 집에 돌아와 소금을 뿌려 단절을 확인했다. 재수 없는 사람이나 물건, 불길한 조짐도 우리 조상들은 소금을 무기로 대결했다. 부정한 것을 보고 듣고 입에 댔을 때 눈, 귀, 입을 씻는 물에 소금을 탔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소금은 사람을 해치는 부정(不淨)과 살(煞)을 씻어내고 마음의 평온을 얻게 해온 한국 정신사의 영롱한 결정체다.

정당 고위층이 불경기로 설움이 복바친 시장을 방문했다가 소금 뿌리고 싶은 심정이라는 상인들 저항에 부딪히고, ‘관제 데모’를 둔 여야 싸움에서 소금 세례를 받을 것이라는 막말이 튀어나오는 등 소금은 우리나라 정치용어로 자리잡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이규태 코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규태코너]발해 龍泉府  (0) 2022.10.11
[이규태코너]육상경기와 한국인  (0) 2022.10.11
[이규태코너]無相 스님  (0) 2022.10.11
[이규태코너]英雄犬  (0) 2022.10.11
[이규태코너] 노인 비하  (0) 2022.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