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개성상인 마인드

bindol 2022. 10. 12. 06:02

[이규태 코너]개성상인 마인드

조선일보
입력 2004.08.27 18:13 | 수정 2004.08.27 18:14
 
 
 
 

돌상에는 돈꾸러미·지필묵(紙筆墨)·실타래 등 장래를 가늠하는 물건들을 놓고 아기에게 집도록 시킨다. 한데 개성상인의 아기돌상에는 다른 데서 볼 수 없는 가래엿이 놓여있고 엿가래 집는 것을 가장 경사스럽게 여겼다. 상가(商家)로서 가운이 번창할 것으로 예언받기 때문이다. 엿을 손아귀에 쥐면 끈끈해 떨어지지 않는다. 한번 잡으면 놓치지 않는 것이 개성상인 마인드요, 그것이 엿가래 쥐는 것으로 상징되기 때문이다.

엿가래처럼 잡으면 놓치지 말고 붙들어야 할 것이 세 가지가 있다. 첫째가 한 업종을 잡으면 바꾸거나 곁눈질 말고 정면대결해서 승부를 보라는 엿 철학이 그것이다. 한말에 양품이 들어오고 이전에 없던 업종이 생겨나자 개성상인들이 업종 바꾸려는 움직임으로 술렁댔다. 이때 한 무시로 장수가 신종 업종인 전당포를 내자 송방도가(松房都家)에서는 전 조합원에게 거래는커녕 이 이단자에게 쌀 한됫박 무 반토막도 팔지 못하게 했다. 이 소외당한 상인은 개성에서 이사갈 수밖에 없었다. 배신에 대한 응징이 아니라 단일 업종을 이탈하는 송방 철학의 오염을 방지하는 고육지책이었다. 둘째로 한번 손안에 들어온 돈은 놓치지 않는다는 엿철학이다. 개성상인치고 인색하다는 말 듣지 않고 성장했다면 송상이 아니다. 지금도 부전(浮錢) 침전(沈錢)이란 말을 흔히 쓴다던데 자신이 번 돈이 침전이요, 빌린 돈 ·이자가 부전으로 투자에는 반드시 침전만 쓰는 등 용도를 가려쓰는 것이 개성상인이다.

끈끈한 점착(粘着) 성분을 내는 유형물질이 엿이라면 상인과 고객 간에 점착성분을 내는 무형물질이 신용이다. 일용품을 지게에 지고 차고 다니는 개성 무시로 장수에게 물동이 이는 또아리 하나 부탁하면 사나흘 동안 장사를 전폐하고 이를 조달하기로 약속한 날 사립문을 열면 그 문전에서 밤새 기다리게 마련이라 하여, 확고한 신용을 빗댈 때 ‘사립 열면 무시로 장수’라는 말이 생겨나기까지 했다. 보도된 바로 MBA첨단 경영 틈에서 개성상인의 2세들이 경영에 성공, 불황타개 리더십으로 뜨고 있다는데 남의 돈 안 쓰는 무차입 경영, 단일업종 고수, 신용 제일이라는 송상 마인드가 대를 물려 빛을 본 셈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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