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코너]도끼 상소
충주지역 유림들이 광화문전에 도끼를 올려놓고 수도이전으로 차별 소외당했다는 민의를 상달하는 지부상소(持斧上疏)를 올렸다. 상소는 올곧은 말이 많아 임금이나 권력자의 비위를 건드려 보복당할 위험이 크기에 그를 감수하겠다는 뜻으로 도끼를 들고 상소를 했던 것이다. 조선조에 임금에게 올린 가장 격렬하고 용기 있는 상소문은 헌종 연간에 용천(龍川) 기생 초월(楚月)이 열다섯 살에 올린 상소문일 것이다. 자신의 미욱한 남편부터 시작하여 ‘좋은 얼굴을 한 대도(大盜)’인 벼슬아치의 부패상, 권세가의 살찌는 곳간, 갓난아이에게까지 물리는 병역세, 주걸(紂桀)을 닮아가는 임금의 주색(酒色)에 이르기까지 직소하고 “엎드려 원하오니 신의 죄를 살피시어 타당하다면 네 수레에 팔다리를 매어 찢어죽이는 차열(車裂)형에 처하고 종로 큰길 위에 조리돌린 연후 서소문 밖에서 능지처참하여 만 사람의 혼이 돌아보지 않게 하소서”로 맺고 있다. 겨우 15세 여인의 열기(烈氣)가 몸에 와닿아 저리게 한다.
옛날에도 임금과 민초 사이에는 이만한 언로가 틔어 있었으며, 천민인 한낱 나어린 기생도 할 말 하고 살았음을 실감케 하는 상소문이요, 그 보복을 감수하는 표현도 상소문사(史)에 전례 없이 격렬한 편이다. 상소의 강도를 높이고 그 진실과 절박함을 강조하는 뜻에서 목을 쳐도 감수하겠다는 뜻으로 곁에 도끼를 두고 상소하게 마련인데, 그 도끼보다 사지를 찢어죽이는 차열(車裂)에 능지처참을 자청함으로써 상소내용에 박진감을 가중시킨 용천 소녀다.
독일 프리드리히 대왕이 포츠담에 자신이 여생을 살 무우궁(無憂宮)을 지을 때 한 농부의 풍차방앗간을 수용했다. 이 농부가 왕궁 앞에서 장검 하나 놓아두고 목을 길게 뻗고, 제 목을 친 다음 방앗간을 빼앗으라고 버티어 지켜냈다. 광화문 복판에 서 있는 22층 교보생명빌딩이 다 올라갔을 때 당시 청와대 보안 관례상 17층 이상은 안 된다고 잘라낼 것을 통고해왔다. 이때 이 건물주인 고 대산 신용호는 차라리 광화문전에서 자신의 배를 가르겠다면서 직소를 해서 구해냈다. 도끼상소가 현대화하여 지금도 살아있음을 그로써 알 수 있다.
(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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