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휴대폰 증후군

bindol 2022. 10. 15. 11:11
조선일보 | 오피니언
 
[이규태코너] 휴대폰 증후군
 
입력 2004.05.16 18:46:01 | 수정 2004.05.16 18:46:01

머리에 몇가닥 물을 들인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을 어머니가 나무랐던 그날 밤 일이다. 친구들이 놀러 왔다면서 과일 좀 갖다 달라기에 들고 들어갔더니 머리가닥을 염색한 너댓명의 또래가 와 있었다는 투고를 신문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말대꾸 대신 시위를 하는 휴대폰세대다. 부모나 선생은 미숙인간들을 올바르게 자라나게 하는 종적(縱的) 기능이라면 휴대폰은 미숙인간끼리 연대하여 종적 기능에 저항하는 횡적(橫的) 기능이다. 휴대폰의 청소년층 보급이 우리나라보다 덜한 일본에서 히끼고모리족(族), 곧 방에 처박혀 가족이나 이웃과 담을 쌓고 사는 자폐(自閉) 증상의 방콕족 증가와 휴대폰 보급률이 정확하게 비례한다는 조사가 있었다. 자기를 독방 속에 격리시켜 횡적관계로만 안주하다 보니 그 인성에 이상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그 이상 가운데 하나가 ‘의사자기(擬似自己)’의 형성이다. 아무도 보지 않고 알지 못하는 나의 영역이 형성되기에 ‘옹고집전’에 두 옹고집이 생겨나듯이 가상의 내가 생겨나 어느 쪽이 나인가 헷갈리게 된다. 곧 진짜 자기와 가짜 자기 틈에 불행이 끼어든다. 둘째로 대인관계는 휴대폰으로 만족하고 혼자 고립되어 살기를 오래 했기에 사람을 만나면 긴장되는 대인공포 증상이 나타난다. 얼굴이 붉어지고 시선을 똑바로 할 수 없어 안절부절못하는 시선 공포, 그리고 모든 인체 부위가 밉다고 여기는 추모공포(醜貌恐怖), 심하면 자기 몸에서 악취가 풍긴다는 자기취공포(自己臭恐怖)가 생기기까지 한다. 셋째로 지배 공간 속에서 내가 왕자요, 공주이기에 자발적으로 뭣인가 하려 하지 않고, 누군가 해주기를 바라는 무기력증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자극을 주거나 방향성을 제시하거나 강제로 끌어가지 않고는 아무 것도 하려 하지 않을뿐더러 뭣을 해야 좋을지도 모른다. 지금 세계 각국에서 문제되고 있는 등교 거부증상의 직접 요인이 되고 있기도 하다. 교실에 들기 전에 휴대폰을 맡겨 놓게 하는 학교가 생겨나더니 휴대폰을 갖고 등교하지 못하게 하는 최초의 금지령이 김해교육청 관내에서 시도되었다. 집단 이상으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구제하는 뒤늦은 다행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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