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곰 발바닥

bindol 2022. 10. 15. 11:09

[이규태코너] 곰 발바닥

조선일보
입력 2004.05.18 18:42
 
 
 
 

거위 발바닥, 곧 아장(鵝掌)이라는 중국요리가 있다. 살찐 거위를 철판 쇠그물 속에 가두고 철판 밑에서 숯불을 피운다. 거위는 뜨거워 오르는 발바닥을 감당 못해 퍼덕거리며 그 사이에 온몸의 기름기가 발바닥으로 집결되어 바닥살이 두껍게 부푼다. 이렇게 한 접시의 거위 발바닥 요리를 위해 수십 마리를 잔인하게 점진 살해했던 것이다. 중국요리는 흔히 먹지 않고 구하기 어려운 재료로 만드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지만, 아장처럼 흔히 먹는 재료의 특정 부위에 인공적으로 기를 집중시켜 별맛을 나게 하는 괴상한 요리 철학을 갖고 있는 중국 사람들이기도 하다. 고대 주(周)나라 이래의 궁중에 팔진요리(八珍料理)가 있는데, 이처럼 짐승의 어느 한 부위에 집중시킨 기(氣) 요리인 데 예외가 없다. 초식동물이기에 잠시도 놀리지 않고 먹어대는 원숭이 입술(猩唇), 항상 뭣인가 삼키고 있는 사슴 목줄, 밤낮 사막을 걸어야 하는 낙타 발굽(駝蹄)과 등짐에 끊임없이 찰과하는 낙타봉(駱峰), 새끼를 배면 태어날 때까지 요동을 멈추지 않는다는 표범 아기보(豹胎), 항상 움직여야 하는 잉어꼬리(鯉尾), 항상 울어대기에 쉴새없이 수축하는 매미배(蟬腹), 그리고 긴 겨울잠을 자면서도 입으로 핥아댄다는 곰 발바닥(熊掌)이 팔진이다.

맹자가 한번 먹고 싶어했다던 곰 발바닥은 그것이 맛있어서가 아니라 요리에 투입된 기 철학에서 비롯된 환상일 뿐이다. 곰이 휴면 중에 발바닥을 핥아 영양을 취한다는 것은, 기름진 영양분이 스며 나와서가 아니라 굳었던 발바닥이 해지면서 가렵기에 혓바닥으로 긁는 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중국의 미식가 임금인 남송(南宋)의 고종이 즐겼다던 천하진품 184종의 요리 가운데 곰발바닥 요리는 없고, 역시 미식가인 청나라 건륭제(乾隆帝)의 식단인 어선방당책(御膳方?策)에도 곰 발바닥 요리는 없다. 명나라 박물지인 ‘본초강목(本草綱目)’에도 질긴 곰 발바닥을 연하게 하는 법만 적혔을 뿐 약효에 대한 언급은 없다.

중국 선양에 곰 발바닥 시장이 서는데 손님은 한국사람뿐이라더니 일전 인터넷에 단가 50만원에 매물이 나왔다는 보도가 있어 허실을 가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