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영통사(靈通寺)

bindol 2022. 10. 22. 06:52

[이규태코너] 영통사(靈通寺)

조선일보
입력 2004.05.11 18:45
 
 
 
 

조선조 화가 강세황(姜世晃)의 그림에 ‘영통사동구(靈通寺洞口)’가 있다. 화상(畵想)을 반추상화한 현대화만 같은 이 그림은 겹싸인 거암틈으로 실낱같은 산길 하나가 나있고 나귀 탄 사람하나가 애써 찾아야 보일 만큼 거암과 대조되어 그려져 있다. 자연계와 초자연계, 속계(俗界)와 영계(靈界)의 경계가 그 길끝에 있는 것같은 착각을 하게 한다. 그래서 이승에서 저승으로 영이 통한다하여 영통사려니ㅡ하는 느낌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고려 태조의 조상이 살았다는 개성 오관산(五冠山) 아래 자리잡은 이 절을 두고 이규보(李奎報)가 송도에서 가장 영험하게 아름다운 경관이라했고 변계량(卞季良)이 이곳에 와보니 구름의 뿌리가 바로 이 협곡임을 알았다 읊었으니 알만하다. 폐허가 돼 내린 이 구름의 뿌리에 건물들을 북측이 짓고 그 지붕에 일 46만장의 기와를 남측이 댄 남북 합작품으로 영통(靈通)을 재개하게 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한국불교 천태종(天台宗)의 발상지로 남측 종단에서 뿌리 찾기로 이룬 재건이긴하나 남북통일 수단의 이상적 방법으로 상징적 의미를 부각시켜 주목을 끌게 하고 있다.

고려 문종에게 네 왕자가 있었다. 왕자 가운데 하나는 출가해야 하는 관행에 따라 영통사에 출가한 것이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이다. 송나라에 유학할 때 가져간 화엄종 불경들은 당시 불교탄압으로 황무지가 된 중국 화엄종의 법통을 접목시켰기로 중국불교사에서도 높이 평가되고 있는 대각국사다. 그는 돌아와 이 영통사에서 천태종을 개종했는데 당시 선종(禪宗)과 교종(敎宗)으로 갈라져 싸우는 교단을 화합하고자 함이었다. 표주박치며 여염에 파고 들었던 말년의 원효대사를 숭앙했던 대각국사도 문자나 이론을 떠나 대중 속에 들어가 염불로 부처님을 찾았으니 영통사는 분열을 봉합하고 뜬 구름 위에서 땅바닥에 내려와 실천하는 현대 한국이 갈길을 가리키고 있기도 하다. 남북문제도 일방적인 힘이 아닌 영통사 법당 짓듯 뼈대는 내가, 지붕은 네가 식으로 하고 협상대상도 뜬구름잡듯하는 이념으로부터 시장바닥으로 내려 와 먹고 입고 사는 자잘한 일부터 손을 댔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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