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코너] 막사발 예찬
이스탄불 토프카피궁(宮) 동양 도자기 컬렉션에서 루비며 에메랄드 등 보석을 눈부시게 박은 백자를 볼 수 있다. 원형미의 파괴로 꼴불견이요, 실용성도 없어 그릇으로도 죽여 놓은 미의 시체를 보는 것 같았다. 서양사람은 시각(視覺)과 청각(聽覺)으로 미를 포족하고 동양사람은 촉각(觸覺)으로 미를 포족한다. 도자기만 해도 그렇다. 페르시아 시장에 가보면 오색 찬란한 도자기 노적 틈을 10분 남짓만 걸어도 현기증이 나는데 부딪쳐 소리를 들어보고 사기에 그 쇳소리가 현기증을 가중 가속시킨다. 이렇게 눈으로 보고 소리로 산다.
하지만 한국 백자의 서민적 표출인 막사발은 백자라 해서 희지도 부시지도 않다. 회백(灰白)으로 화려하고 번적이고 눈부심을 거부하고 수수하고 검소함을 추구한다. 잘 만들려 하지도 않고 곱게 다듬을 필요도 없었다. 그저 될대로 만들기에 들쑥날쑥이요, 유약(釉藥)이 아무렇게나 흘러가도 무방하며 겉이 거친 것이 오히려 편하고 실용적이다. 그 사발에 값지고 향기로운 음식은 격에 맞을 리 없고 그저 된장국이나 담아 먹고 떫디떫은 녹차나 따라 마시면 되는 막그릇이다. 그러기에 꾸밈이 없고 야심도 없으며 솔직하고 거만하지도 않으며 아름답다는 것과는 거리가 먼 그런 심상이 박힌 막사발이다.
이 조선의 막사발을 두고 세계 도예(陶藝)미학의 태두인 버너드 리치는 “이 막사발처럼 없으면서 있는 것 같은 색과 투박한 촉감을 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곁에 있다면 얼마나 편하고 남을 행복하게 할까”라며 머리를 감싸고 울부짖었다 했으며 고 최순우씨는 “막사발에 쌀밥을 담아먹어서는 안 된다”했고 박물관에 들른 한 외국인 부인이 막사발에 꽂힌 꽃을 들어보이며 “자기(磁器)에 대한 모독이다” 했다는 글을 읽은 기억도 난다. 일본에서는 이 조선의 막사발을 ‘이도자왕(井戶茶碗)’이라 하여 일본에 있는 26점 모두 국보로 지정, 은그릇에 보존하고 있음을 보았다. 한국 서민의 손가락끝으로 흘러나가 맺힌 무심의 결정이 이렇게 각광받고 있는 것이었다. 이 막사발의 전통을 고고히 유지해내린 지리산 자락의 장금정씨가 막사발전을 열고 있어 숨어 있는 미를 끌어내보았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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