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코너] 돌아온 고래
길이 7m의 고래가 울산 앞바다의 그물에 걸려 1억원대에 팔렸다는 보도가 있었고 70여년 전에 한국해역에서 자취를 감춘 향고래 일가족이 모습을 나타내는 등 고래가 돌아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토종고래는 초식하는 민족을 닮아 풀 고래가 주종으로 머리는 영리하지만 대체로 체구가 작은 게 특징이다. 울산 반구대의 석기시대 암각화(巖刻畵)에 고래 두 마리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미루어 한국의 고래 역사는 유구하다. 기록상으로는 고구려 알천왕(閼川王·AD 47) 때 동해안에 사는 고주리라는 분이 밤에도 빛을 내는 고래 눈깔을 바쳤다는 것이 최초로 고대에는 조명용으로 고래를 잡았다.
고려시대에는 기름의 수요 때문에 고래들이 수난받았다. 원나라에서 사신을 자주 보내어 동해안을 순찰하며 고래기름을 수탈해 갔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조에 들어서는 고래가 죽어 바닷가에 표착하면 관에서 백성을 징발, 도끼로 수염과 가죽 그리고 살을 잘라내어 이를 백성의 등짐으로 실어 날라 천금을 챙기고 백성은 얻는 것이 없었다고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는 적고 있다. 고려시대 이래로 고래가 나타나면 고통이 이르렀다 하여 고래(苦來)라고 빗댔으며 따라서 잡으러 나갈 생각도 하지 않았다. 고래고기 안 먹는 희소민족 가운데 낀 것이며 개화기 이래 러시아와 영국 일본 네덜란드 포경선이 동해를 누빈 것을 방관했던 것도 고래(苦來)관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중국문헌에 나타난 한국해역의 고래는 한국사람처럼 가족주의요, 인정도 많고 머리도 잘 돌았다. 새끼들을 거느리고 다니는 낙랑해돈(樂浪海豚)은 일가족이 떼지어 다니다가 새끼를 잡아가면 어미가 끝까지 뒤쫓아와 주야로 비명을 질러 탈환해 간다 했다. 이 한국해역의 고래가 머리가 좋다고 알려졌던지 ‘뱃전에 머리 들어/뱃사람과 말을 나눈다’는 시도 찾아볼 수 있다. 옛 우리나라 부잣집들에서 고래 기름을 비싸게 구해 자제들 글방에 불 밝히곤 했는데 고래 기름불로 글을 읽으면 고래처럼 머리가 좋아진다고 알았기 때문이다. 이 속설이 지금도 통한다면 입시자모들 고래기름 특수로 포경기지 장생포(長生浦)는 만원일 것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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