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코너] 고속철과 費長房
중국의 고위급 인사가 국빈으로 영국에 들렀을 때 명문학교인 이튼에 들렀던 것 같다. 운동장을 내다보니 한 학생이 시종 트럭을 돌며 달리고 있어 그를 보고 뭣하고 있는 거냐고 물었다. 이에 장거리 기록에 도전, 훈련 중이라고 하자 이 중국국빈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렇게 빨리 가서 남은 시간을 어디다 쓰려고 하느냐고 물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4월 1일 개통된 고속철의 속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렇게 빨리 가서 시간을 남길 필요가 없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기존의 완행열차를 줄이고, 없앤것에 불만을 품고 삯을 올려받으려는 약은 수작이라고 생각하는 여론이 보도되었다.
100여년 전 경인철도가 개통되었을 때도 삯을 타산, 기차를 외면했던 전례가 있었다. 당시 책정된 기차 삯은 1마일당 2전5리였다. 그 무렵 사람들 하루에 30마일 걷는 것은 예사이기에 그 거리를 기차 삯으로 환산하면 75전이 된다.
당시 주막의 한끼 밥값이 5전이라 서울서 인천까지 걸어가는 데 하루 잡아 세끼 먹는다 해도 15전, 짚신 한 켤레 값이 10전, 합해서 25전이면 30마일을 갈 수 있었으니 기차로 가는 이보다 50전이나 버는 것이 된다. 결국 기차 타지 않는 것이 돈 버는 일이라는 인식이 번져 기차칸은 텅텅 비어다녔던 것이다.
그리하여 선무학사(宣憮學士)를 고용, 계몽하고 다녔는데 한 유생이 선무학사에게 물었다. 철로가 무슨 소용이냐고…. 아침에 부산진을 떠나면 저녁에는 한성에 도착하는데 여행에 그 아니 편리한가 하자 ‘비장방(費長房)의 축지술(縮地術)인가 우습도다.
치인(痴人)의 꿈이여’라고 했다. 시흥현감은 혹세무민(惑世誣民)한다 하여 이 선무학사를 잡아다 태형에 처하기도 했다. 초기 기차의 별칭이 비장방인 것은 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늘에서 죄를 짓고 지상에 유배당한 신선 호공(壺公)의 제자가 된 비장방에게 호공이 돌아가면서 대 지팡이 하나를 주고 갔다. 이 대지팡이를 타면 천리가 축지되어 순식간에 날았으니 경부 간 고속철을 예언한 것이 됐다.
사람들은 빨라진 것만 좋아하지 그로써 삶의 질을 걸울 줄 모르는 것은 100여년 전이나 피장파장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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