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가 있는 아침

(145) 추월(秋月)이 만정(滿庭)한데

bindol 2022. 10. 23. 09:00

(145) 추월(秋月)이 만정(滿庭)한데

중앙일보

입력 2022.10.13 00:23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추월(秋月)이 만정(滿庭)한데
김기성(생몰연대 미상)

추월이 만정한데 슬피 우는 저 기러기
상풍(霜風)이 일고(一高)하면 돌아가기 어려우리
밤중만 중천(中天)에 떠 있어 잠든 나를 깨우는가

-병와가곡집(甁窩歌曲集)

가을은 명시(名詩)가 태어나는 계절

사계절 중에서도 가을 달빛은 유난히 맑고 밝다. 그 빛이 휘영청 뜰 안에 가득히 비치고 있는데, 높은 하늘에는 슬피 울며 날아가는 기러기 소리가 더욱 처량하다. 겨울을 나려고 가을에 북쪽에서 날아오는 저 기러기. 차가운 서릿바람이 한 번 높이 일게 되면 되돌아가기도 어려울 터인데, 어떡하나? 한밤중에 하늘 높이 떠 있어 잠든 나를 깨우는구나.

이 감상적인 작품을 남긴 김기성(金箕性)은 조선조 숙종 때에 김천택·김수장과 더불어 경정산가단에서 활동한 가인(歌人)이다. 그의 시조 19수가 전한다. 작자의 이름을 『병와가곡집』은 김기성으로 밝히고 있으나, 김두성(金斗性)으로 표기한 판본도 있다. 어쩌면 두 이름으로 활동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가을은 시의 계절이다. 많은 명시가 가을에 태어났고, 가을을 소재로 한 시도 많다. 가을 시를 쓰지 않은 시인은 없을 것이다. 우리 시조에도 가을을 소재로 한 노래가 많이 전한다. 싸늘한 계절의 정조(情調)가 인생을 되돌아보고, 삶의 애환을 자극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너무 슬퍼하지 말기. 삶은 윤회(輪回)하는 것이니, 우수(憂愁)를 창조의 동력으로 받아들이기.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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