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가 있는 아침

(147) 설월(雪月)이 만창(滿窓)한데

bindol 2022. 11. 11. 16:10

(147) 설월(雪月)이 만창(滿窓)한데

중앙일보

입력 2022.10.27 00:35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설월(雪月)이 만창(滿窓)한데
무명씨

설월이 만창한데 바람아 부지마라
예리성(曳履聲) 아닌 줄을 판연(判然)히 알건마는
그립고 아쉬운 적이면 행여 긘가 하노라
-병와가곡집

“비단 버선 신은 발이 밤새도록 시립니다”

아름다운 서정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시조를 지은 가객(歌客)의 이름을 알 길이 없다. 아마도 그의 신분은 기생이거나 중인이었을 것이다. 우리 시조에는 이렇게 주옥같은 작품을 남기고도 작자의 이름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엄격한 신분제로, 작품집을 남긴 양반과 달리 평민은 자신에 대한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눈 쌓인 밤에 휘영청 밝은 달빛이 창 가득히 비치고 있다. 바람 소리까지 들려온다. 밖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가 님이 나를 찾아오는 신발 끄는 소리가 아닌 줄을 분명히 알지만은, 그립고 아쉬우니 행여 님이 오시는 소리가 아닐까 기대하는 마음을 버릴 수 없다.

사랑을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기다림이 얼마나 가슴 설레는 것인지를……. 때로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를…….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 같은 기다림의 정한을 그린 시들이 많다. 중국의 시선(詩仙) 이백(李白)은 곱게 차려입고 밤을 새우며 황제를 기다리는 궁녀의 한을 명시 ‘옥계원(玉階怨)’에서 이렇게 읊었다.

‘기보옥계행(起步玉階行) 옥 계단 위로 발걸음 옮기어 가니/ 나의백로습(羅衣白露濕) 비단옷은 이슬 젖어 축축하구나’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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