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코너] 托鉢 三萬里
초불교적인 평화와 생명운동으로 부각되고있는 실상사 주지 도법 스님과 환경운동으로 뜨고 있는 수경 스님이 탁발 걸식하는 3만리 수행에 나섰다. 한 달에 1000리씩 3년이 걸릴 대장정이다.
옹진골 옹당촌에 사는 옹고집이 탁발 걸승의 귀를 뚫고 태를 쳐 내쫓자 그 응보로 옹고집과 똑같이 생긴 가짜 옹고집을 보내어 패가 망신시킨다. 그러하듯이 한국 이야기의 태반은 이 탁발 걸승의 천대나 학대가 화근이 되고 있으리만큼 남에게 베푸는 보시(布施)인 탁발정신은 한국인의 마음의 기조가 돼 왔다.
바리(鉢)로 곡식이나 음식을 받는다는 뜻인 탁발은 이미 석가모니께서 그로써 수행했고, 고승 문강(文康)의 탁발 수행에 명나라 태조가 탁발가를 지어부르며 동행했을 만큼 탁발은 스님뿐만이 아닌 큰 사람됨의 수행 수단이었다. 탁발 걸식을 하면 아집(我執) 아만(我慢) 등 못다 버린 이승에서의 십악(十惡)을 떨쳐버리고 대신 십선(十善)을 수행하며 십주(十住), 곧 어떤 험한 곳에서도 안주할 수 있게 된다 했다.
곶감이 아기 울음을 멈추게 한 것을 엿듣고 호랑이가 도망쳤듯이 아기 울음을 멈추게 하는 데 ‘손님 오셨다’고 곧잘 얼렀던 것이다. 손님은 신명이 보낸 사람으로 신성시하고 환대하며, 떠날 때까지 새옷을 입고, 말조심하는 외포의 상대요, 그래서 손님은 두렵다. 홍역을 작은 손님, 마마를 큰 손님이라 불러 깍듯이 모시면서 두려워 했던 것도 신명이 보낸 사자라는 인식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원효 대사가 탁발로 터득한 초월경지에 젖어보자. 대사는 동냥가서 밥 얻으러 왔다 하지 않고 궂은 일 해드리러 왔다고 했다. 고향인 압량(押梁)에 찾아 갔을 때 질병이 휩쓸고 간 마을에 두 달 동안 탁발로 자조할 수 있게 해놓는 동안 자신이 원효임을 아무에게도 밝히지 않았다.
오색 비단 드리운 조롱박 치고 노래와 춤을 추며 무지 대중 속에 들어가 탁발로 무애(無碍)의 경지까지 이끌어 올린 원효는 탁발성자다. 탁발 떠난 두 스님이 상실하고 없는ㅡ 하지만 유구한 우리 탁발문화를 접속시키는 3만리이길 기대하는 것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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