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예수의 受難濃度

bindol 2022. 10. 24. 05:31

[이규태코너] 예수의 受難濃度

 

조선일보
입력 2004.03.02 18:41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까지 받은 수난에 대한 기록과 회화, 그리고 영화는 수백 수천 종에 이른다. 한데 2000년 동안의 그 많은 기록 가운데 그 수난 농도가 가장 진하고 섬뜩하게 묘사된 영화 ‘그리스도의 수난’이 사순절 첫날 미국에서 개봉되어 은막계를 휩쓸고 그 화면을 보는 현장에서 할머니가 충격사하기까지 했다. 왜 하필 지금 그리스도를 가해한 유대인, 그 유대인에 대한 반감에 기름을 붓는가에 대한 논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신약 성서를 비롯한 많은 기록들을 종합하면 그리스도가 육체적 수난을 받는 대목은 다음 네 군데로 집약된다. 우선, 유다의 배신으로 로마 병사와 군중에게 체포되어 로마총독 빌라도 앞에 대령했을 때의 예수의 모습. 횃불에 비친 예수의 그을린 볼은 누군가에게 구타당해 붉게 부어 올랐고 왼쪽 눈 아래 살이 잘려 피가 흐르고 있었다. 군중에 의해 눈이 가려진 채 마구 모욕과 구타를 당하며 연행되었던 것이다.

십자가형을 선고받은 직후 그 절차에 따라 통나무에 뒤로 묶인 후 체형을 받는다. 못과 쇳조각 뼈가 박힌 채찍으로 40번을 친 후 여우의 출입을 막고자 심어 놓은 가시나무로 관을 만들어 피 흐르고 있는 머리에 씌우는 것이 두 번째 수난이다.

 

빈에서 보았던 것으로 화가 브뢰겔의 ‘십자가 고행’이란 그림이 생각난다. 바싹 다가가야 보이는 각기 다른 세밀화의 모음으로 등에 칼을 찔린 사나이, 죽은 자식을 안고 있는 어머니, 교수형 받고 있는 죄인 등등 이 세상에서 받는 모든 고통의 총화를 십자가를 지고 나르는 예수가 감당하여 그림 복판에서 벗어나는 주제였다. 이 고통의 총화와 맞먹는 십자가 고행이 세 번째 수난이요, 손발이 십자가에 못 박혀 세워진 후 살아 있었던 6시간이 네 번째 수난이다.

얼마든지 고통 농도를 진하게 할 수 있긴 하지만 새삼 가해자인 유대인과 크리스천을 이간하는 지렛대질을 해야 했던 저의가 뭣일까. 재계·정계·언론계 등 미국을 주름잡고 있는 데 대한 미국 민중의 은연중의 반유대 감각과 미국이 테러공포에 휩싸이게 된 원인 제공을 한 데 대한 반감이 숙성시킨 응어리를 흥행과 야합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도 싶어진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