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오대산의 산새들

bindol 2022. 10. 25. 05:49

[이규태코너] 오대산의 산새들

조선일보
입력 2004.02.19 17:46
 
 
 
 

혜초 스님 이래 한국의 고승들은 중국 불교성지인 오대산에 유학했고 스님이라면 오대산에 한 번 순례하는 것을 소원으로 삼았었다. 강원도 오대산도 그 지형이 중국 오대산을 축소해 놓은 듯하다 하여 얻은 이름이다.

그 중국 오대산 산새들은 사람을 보면 어깨 위에 내려앉고 손을 뻗으면 손바닥 위에 앉아 고개를 넘곤 한다는 기록들을 남겼다. 성지를 거룩하게 하고자 하는 과장이려니 했지만 법과 도를 구하여 몇 천리 몇 만리 밖에서 찾아온 사람들만이 사는 생명애의 성지에서 산새와 사람과의 친화력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눈에 덮인 강원도 오대산 이름 모를 산새들이 관광객의 머리, 어깨, 손 위에 내려앉는 광경이 보도되었는데 중국과 한국 오대산 간의 정신적 공통분모의 발현(發顯)을 보는 것만 같았다. 더러는 눈으로 먹이를 잃은 산새들의 생존접근으로 볼지 모르나 이전의 어떤 대설에도 없었던 일이요, 굶었다고 사람을 찾아온 산새·들새의 전례도 없는 일이기에 그렇다.

산새와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것은 기심(機心)이라는 사람 마음이다. 바닷가에 사는 어부 하나가 해오라기와 친해져 가까이 와 놀곤 한다는 말을 아내에게 하자 그럼 한 마리 잡아오라 했다. 그러마 하고 이튿날 바닷가에 나갔더니 한 마리도 가까이 날아오지 않았다.

 

곧 날아오면 잡아야겠다는 예비심이랄 기심이 끼어들었기 때문이요, 새는 이 기심에 초감각적으로 민감하다. 선조 때 영의정 박순(朴淳)의 별호가 숙조지선생(宿鳥知先生)이다. 만년에 지리산에 들어가 살았는데 지팡이 짚고 산길을 산책하면 그 지팡이 소리 알아듣고 뭇 산새들이 내려와 앞서거나 뒤따르며 어깨·머리 위에 앉곤 한다 하여 얻은 별호다.

서울 인왕산 아래 산새 별궁이라는 궁가가 있었다. 병자호란 때 볼모로 잡혀갔던 소현세자 따라 조선에 왔던 명나라 궁녀 굴씨(屈氏)가 세자 돌아가신 후에 이 별궁에서 여생을 살았는데 인왕산 산새들을 불러모아 산새들의 낙원을 이루었었다. 오대산의 산새들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불심이나 자연보호 정신이 기심을 누른 때문일 것으로 본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