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코너] 벨기에 영사관
지은 지 100년 되는 고전주의 양식의 벨기에 영사관이 서울 시립미술관으로 거듭난다는 보도가 있었다. 지하 1층~지상 2층 도합 450평의 이 건물은 그동안 낡은 집이면 헐어 없애는 결벽행정에서 용케 살아나 돋보이는 건물이다. 이 건물은 한말 일본 제국주의의 촉수에서 벗어나려는 안간힘의 자국이 남아있는, 역사가 살아있는 건물이기도 하다.
이 집을 지은 초대 총영사인 방카르(한국이름 방갈·方葛)는 한국황실에 협조적이었다.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밀사파견을 은밀히 진행해오던 고종황제는 벨기에 영사관에 사람을 보내어 그 회의에 한국대표를 참석시키는 것을 주선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벨기에 왕실에서는 만국평화회의와의 접촉 사실을 이 영사관에 자주 통보해 왔다.
유럽 열강의 굴레에서 고통받다 독립한 레오폴드 2세가 약소국으로서의 공감으로 한국에 협조적이다가 서거한 것은 경술국치(庚戌國恥)가 있던 전해 12월이었다. 이 황제의 추도식이 명동성당에서 있었는데 이에 참석하는 도중에 매국의 원흉이요, 당시 총리대신이던 이완용(李完用)이 습격을 당한다.


당시 대한 매일신보의 보도에 의하면 명동성당 정문 약 7칸 앞에서 단발 청년이 뛰어나와 8치 가량의 주머니칼로 인력거 차부(車夫)를 먼저 찌르고 인력거에 뛰어올라 이완용의 허리와 어깨 세 군데를 5~10㎝ 가량씩 찔렀다. 이재명(李在明) 의사의 이 쾌거를 마지막으로 한국과 벨기에의 교류사는 갈피를 접는다.
당시 일본 영사관 뒤쪽 미국인 헐버트 소유의 충무로 1가 18번지 땅을 사 이 영사관을 지었고, 불어학교 출신인 민속학자 이능화(李能和)가 그 영사관의 번역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일제 때 일본 해무성 무관부로 쓰였다가 한국전쟁 후에는 해군본부 헌병감실이 들어 있었다. 그 후 상업은행에 팔렸다가 사적으로 지정받고 사당역 인근 현재 위치에 이전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이 미술관에 방 하나를 따로 내어 일천한 대로 한·벨기에 교류사와 한국전쟁 참전국으로서의 사적이 전시됐으면 한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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