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15] 가야금 배우는 외국 아이들

bindol 2022. 10. 26. 04:31

[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15] 가야금 배우는 외국 아이들

입력 2022.10.25 03:00
 
 
 
 
 

최근 브라질에 살고 있는 유럽 친구가 대뜸 물었다. 도대체 블랙핑크가 누구냐고. 한국에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중학생 딸들이 유튜브로 한국어를 배우고 인터넷에서 가야금을 구매하려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왜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이 K팝에 열광하고, 한국어로 만들어진 영화가 글로벌 영화제 상들을 휩쓸고 있는 걸까? 물론 아티스트와 작품이 훌륭하기 때문이겠다. 하지만 무작정 ‘국뽕’에 빠지기 전 생각해보자. 세상은 크고 좋은 작품은 많다. 왜 하필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일까?

20세기 초 이탈리아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는 발달된 자본주의 사회에선 폭력을 넘어 ‘문화적 패권’을 통해서도 권력 유지와 통제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가 처음부터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기획적으로 K팝과 한류 영화를 만들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K콘텐츠 성공의 진짜 원인은 무엇일까? 개인의 선택은 대부분 우연과 필연의 결과이지만, 뇌는 언제나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는 ‘이유’를 상상해내기 때문이다.

 

일본 기업들이 세계를 장악하던 1980년도 J콘텐츠 역시 각광받았다. 역겨운 음식으로 여겨졌던 날생선은 최고급 요리로 인기를 끌었고, 초비만 남성들의 몸싸움에서 고상한 철학적 개념을 발견하려고들 했다. 비슷하게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인들은 할리우드 영화를 보며 꿈과 희망을 키웠고, 2000년 전 세계인들에게 ‘메이드 인 로마’는 로망의 대상이었다.

결국 K콘텐츠의 성공은 어쩌면 한국산 휴대폰과 반도체와 자동차를 구매한 세계인들 머릿속 뇌의 착시현상을 기반으로 하는지도 모르겠다. 어렵게 번 내 돈을 주고 구매한 물건을 만들어낸 나라라면 문화가 후질 리 없고, 역으로 그 나라 제품은 더욱 훌륭해 보인다. 뇌의 착각과 콘텐츠의 실질적 퀄리티 간의 순환구조를 유지해야만 한류는 단순한 유행이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의 문화 헤게모니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