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17] 폭력이 세상을 구원하나

bindol 2022. 11. 22. 05:33

[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17] 폭력이 세상을 구원하나

입력 2022.11.22 03:00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은 렘브란트와 페르메이르의 위대한 작품들로 유명하다. 그중 역시 가장 유명한 작품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이겠다. 그런데 얼마 전 충격적인 일이 하나 벌어졌다. “오일 사용을 멈춰라!”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은 젊은이들이 접착제로 바른 자신의 머리를 페르메이르 작품에 붙여버렸으니 말이다. 비슷하게 파리 루브르 박물관 모나리자는 케이크로 범벅이 됐고,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선 고흐의 ‘해바라기’에 토마토 소스가 던져졌다.

명작들을 훼손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준 젊은이들은 나름대로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지구온난화가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오늘날. 미래 인류는 대재앙 수준의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유엔은 경고한다. 그리고 하필 인류가 가장 협업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야 할 이 시점에 우리는 탈세계화와 신냉전 시대의 서막을 경험하고 있다. 덕분에 암스테르담, 싱가포르, 그리고 인천과 부산이 바다에 잠기는 디스토피아 미래를 걱정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마우리츠하위스에서 난동을 부린 젊은이들은 말한다: 액자에 걸린 해바라기를 관람하는 동안 진짜 해바라기는 사라져 가고,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걱정하는 동안 개발도상국 수많은 소녀가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죽어갈 거라고. 이해 못 할 만한 주장은 아니다. 하지만 폭력은 언제나 더 큰 폭력을 낳게 한다. 지구 멸망을 막기 위해 인류 유산 중 하나인 명작을 훼손하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사람 목숨의 가치 역시 작아진다. 명화 훼손으로 시작된 폭력은 결국 사람에 대한 폭력으로도 언제든지 변질될 수 있다는 말이다.

미래를 걱정하는 젊은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기성세대의 공감과 협업이다. 기성세대가 지구를 망쳐 놓았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도움과 동의 없이 기후변화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인류 최고의 예술 작품들을 훼손하는 행위는 공감보다 혐오, 협업보다는 반감을 불러내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