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못돌아온 위안부

bindol 2022. 10. 26. 16:07

[이규태코너] 못돌아온 위안부

조선일보
입력 2004.01.15 16:03
 
 
 
 

희비애로(喜悲哀怒) 열두감정이 동시에 촉발되면 그것은 웃는 모습이 된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어떤 감정이건 그것이 극치에 이르면 웃는 모습으로 변한다고도 한다. 이같은 착잡하고 처절한 웃음을 옛 선조들은 ‘환녀(還女)의 웃음’이라 했다.

환녀란 쇄환녀(刷還女)의 준말이요, 쇄환녀는 병자호란 때 납치돼 갔다가 돌아온 수많은 어머니며 아내며 누이를 일컬었다. 호란 후 요동(遼東)지방에는 군데군데 이 납치해간 피로인 수용소를 만들고 노예로 팔아먹었는데 사행(使行)길 가던 연행기록에 그 목격담이 생생하다.

“사행이 지나간다는 소문을 듣고 통나무 울타리 가로 달려나와 고함치길 ‘나는 어느 고을 아무개의 딸이요’ ‘나는 어느 고을 진사 아무개의 아내요’ 하고 고함치며 소식 전해달라고 통곡을 하는데 도망치다 잡혔는지 어떤 여인은 양쪽 귀에 화살이 꽂히기도 했고, 허벅지살을 에어내어 걷지도 못하고 땅을 치고도 있었다” 했다.

이 수난 끝에 고향에 돌아온 쇄환녀를 법도있는 집안에서는 더럽혀졌다 하여 문안에 들여놓기를 거부했다. 그토록 그리워 갖은 고통 끝에 혈육 찾아 돌아온 이 여인은 사무쳤던 그리움, 만나게 된 기쁨, 실절한데 대한 죄책감, 기구한 신세에 대한 원망, 거부당한데 대한 경악 등이 범벅이 되어 실룩실룩 웃을둥 말둥 그 야릇한 웃음으로 벅찬 감정을 감당못해 그 길로 강물 찾아가 몸을 던졌고, 더러는 한많은 요동벌을 찾아 되돌아갔다.

 

요동벌에는 이들이 돌아가 정착하거나 노예로 팔려나가 살고 있는 고려보(高麗堡)란 집단촌이 허다하며 사행길의 하인들이 사먹는 음식값을 받지 않았고 눈물 닦을 수건을 들고와 고향소식을 묻고 훌적훌적 울고가곤 한다 했다.

2차대전 중 꽃다운 나이로 위안부로 끌려갔다가 돌아오지 못하고 중국에서 60여년 살아온 할머니 두명이 확인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전후에 바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실절한데 대한 수치심과 자책감으로 중국에 눌러 살아온 2차대전판 고려보의 한국여인들이다. 왜 한국사는 이렇게 돌아오지 못하는 쇄환녀를 드문드문 그 갈피 속에 꽂아와야 했던지 통탄할 노릇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