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학력 사회악

bindol 2022. 10. 26. 16:06

[이규태코너] 학력 사회악

조선일보
입력 2004.01.14 17:12
 
 
 
 

한국·일본·미국·독일·스웨덴의 젊은이들이 자기 나라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인종차별과 실업을 들었는데 유독 우리나라 젊은이들만이 학력에 따른 차별을 들어 주의를 끌게 한다.

학력의 양과 질에 의해 일이 달라지고 수입이 달라지는 불평등 감각이 한국청년들의 으뜸가는 불만이었다. 젊은 교수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도 대학 내 파벌, 곧 학벌을 들었으니 학력이 지배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비중을 가늠하게 한다.

이민국가인 미국처럼 평등하게 출발한 나라도 안정이 되면서 차별이 있는 계급사회로 돼갔다. 연전 샌프란시스코에서 영국계 백인으로 신교를 믿는 와스프들만의 배타적 클럽이 세계적 오페라 「토스카」를 초청했었다.

공연 전야에 갖게 마련인 배역들의 초청 만찬에 토스카역의 주인공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초청되지 않아 공연이 무산되었을 정도로 차별이 혹심해진 미국이다. 영국에서는 직업 세습에서 오는 차별이 엄연하여 수위나 배달원 직종의 부자세습률이 70%나 되리만큼 차별의 벽이 두껍고, 또 그 벽을 뛰어넘으려 하지도 않는다.

한데 상향수단으로 과거(科擧)가 있어서인지,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차별의식 때문인지 ‘고학력=출세’라는 등식사고가 체질화되어 보다 높은 학력을 지향하는 상향의식이 우리나라처럼 강한 나라가 없다.

 

구미에서는 고등학교만 나오면 기차삯만 타들고 도시에 나아가 제 분야를 제 힘으로 개척, 복선(複線)상향을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부모의 힘에 기대어 오로지 높은 학교, 이름있는 학교를 찾아 온 국민이 총집중하는 단선(單線)상향을 하기에 인생 전반에서 풀이 죽는다. 교육보험이 있는 나라도, 또 그것이 잘되는 나라도 우리나라뿐이다. 자식에게 들이는 교육비도 OECD국가에서 으뜸이고….

미국이 그러했듯이 어느 한 사회나 단체 직장이 안정되려면 종적인 서열을 잡으려 들고 잡으려면 어디선가 차등을 가려야 한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매스커뮤니케이션의 보급으로 격차가 줄어 차별화할 대상 잡기가 어려워지는데 우리나라에서 유독 선명하게 부각되고 있는 분야가 학력이다. 그래서 젊은이들의 가장 크고 공통된 골칫거리가 학력차별로 부각된 것일 게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