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코너] 꽃미남
차이가 엄연했던 남녀가 할 일의 한계를 허무는 것으로 진행된 현대화다. 그래서 색다른 볼거리가 첩첩인데 여자권투의 챔피언 경기도 그러하려니와 라운드걸 대신 한국 최초로 등장한 라운드맨인 ‘꽃미남’도 볼거리였다.
근육질을 과시하기도 하고 성감을 유발하는 옷차림이며 선글라스에 보디가드 패션 등으로 여성팬들을 매혹시켰다 한다. 꽃미남의 등장은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는 해프닝이기도 하지만 역사적으로 그 출현을 더듬어보는 것도 무위하지 않을 것 같다. 옛날 농촌에 숫총각으로 불리우는 잘생기고 건장한 꽃미남이 있었다.
정월 대보름날 나경(裸耕)이라는 풍년기원 행사가 있었는데 이 숫총각을 벌거벗겨 짚으로 만든 소를 몰아 논밭을 갈게 하고, 곱게 단장한 꽃미남 떠받치고 이 논 저 논 밟고 다녔다. 생산력의 상징으로 마을에 이같이 꽃미남을 만들어두는 관행이 있었다.
오대산은 암산(雌山)이요 치악산은 수산(雄山)이듯이 우리 조상들은 산도 음양으로 갈라 파악했다. 산신령을 모실 때 수산에는 무당이 신주노릇을 하지만 암산은 여자를 시기하여 숫총각으로 신주를 삼는 것이 관례였다.
「송남잡식」이라는 문헌에 늙은 과부들의 모임인 백상계(白孀契)와 젊은 과부들 모임인 청상계(靑孀契)라는 은밀한 모임이 있었는데 이 모임에 유일하게 초대되는 남성이 바로 이 꽃미남이었다. 옛 산촌에는 이처럼 꽃미남의 수요가 많았던 것이다.
이 꽃미남의 뿌리를 소급해 오르면 신라 화랑으로 귀결된다. 이미 삼한시대부터 청소년이 공동생활을 하는 청소년의 집이 있어 이곳에 모여 심신을 단련하고 공공의 공동작업을 하고 나라를 지키는 방어임무까지 다했다.
이 청소년을 결집시키는 구심으로 원화(源花)라는 미녀를 두었는데 서로 질투끝에 살생을 하자 상류사회 출신의 미모의 청소년, 곧 꽃미남으로 구심점을 삼은 것이다. 이것이 화랑이요, 한 화랑당 300명 내지 1000명의 청소년이 결집해 심신단련과 국토유람, 공공노역에 국가유사시에는 국난을 감당했던 꽃미남이었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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