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전등 나무

bindol 2022. 10. 27. 08:27

[이규태코너] 전등 나무

조선일보
입력 2003.12.30 17:39
 
 
 
 

연말만 되면 서울의 도심과 유흥업소의 앞 가로수들은 미니전등으로 휘황찬란한 전등나무로 탈바꿈한다. 활엽수건 낙엽수건 아랑곳없이 보석을 뿌려놓은 듯 전기옷을 입히는데, 그로써 나무들이 고통받거나 생육에 지장받지 않을 수가 없다.

프랑스 과학자로 동시대의 볼테르가 존경했던 메랑이 서재에서 기르는 콩과의 미모사가 황혼으로 빛이 약해지면서 잎이 안쪽으로 오므라드는 것을 보고 식물도 잠을 잔다는 학설을 발표했었다.

그 2세기 반 후 미국 플로리다 환경위생연구소의 존 오토 박사는 정오에 미모사 여섯 그루를 들고 광산 엘리베이터를 타고 1950m 지하로 내려갔더니 여섯 그루 모두 잎을 안으로 닫았던 것이다. 식물의 생존에는 빛만이 아닌 어느 만큼의 어둠이 필요하다는 학설의 근거가 되었다.

나팔꽃은 아침에 먼동이 트면서 피기 시작한다. 햇살을 받아 피는 것으로 알아온 나팔꽃은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다. 하지만 야밤에 아침햇살과 같은 광도의 빛을 나팔꽃에 비춰보았지만 나팔꽃은 피질 않았다. 나팔꽃은 햇살 때문에 피는 것이 아니라 피어나는 데 적정량의 어둠이 필요하다는 학설을 뒷받침한 것이다. 지금 서울의 전등나무들에서 어둠을 약탈, 잠을 못 자게 하는 것은 식물학대요 고문이요 생태파괴가 아닐 수 없다.

 

철조망만 쳐 놓아도 공중의 전기를 끌어들여 인근에 자라나는 식생을 달리해 놓는다던데 전선으로 모든 가지를 감은 전등나무들이 심한 감전상태일 것은 자명한 일이다.원예나 임업에서 적정량의 전기는 생육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하여 전기재배를 하기도 한다.

한데 가르디니 실험이라 하여 한 수도원에서 공중의 전기를 끌어들이는 철망을 채소밭 위에 쳤더니 채소가 모두 시들기에 이를 벗겨 다시 살아나게 한 일이 있었다.

공기 중에 있는 전기가 자연적으로 공급되어 식물자체가 조절이 가능했을 때 양분이 되는 것이지 과잉공급되거나 자체조절이 불가능할 때 해독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나무 밑동부터 크고 잔 가지 끝까지 전류로 칭칭 휘감아 놓은 이 전등나무는 잠만 못 이루는 것이 아니라 전기고문까지 가하고 있는 셈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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