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내 자식 죽이기

bindol 2022. 10. 27. 15:55

[이규태코너] 내 자식 죽이기

조선일보
입력 2003.12.22 15:58
 
 
 
 

카드 빚에서 헤어나지 못한 20대 아비가 두 아들딸을 한강에 차례로 던져 죽였다. 인륜(人倫)을 잇는 쇠동아줄 같았던 끄나풀이 거미줄처럼 가늘어지더니 이제 그마저 끊어지는 소리를 듣는 것 같다.

10여년 전 ‘타임’지에 미국의 달라지는 가족상을 둔 얀케로비치 교수의 조사결과가 소개되었는데, 미국 부모들의 43%가 권위보다 자유를, 성공보다 자기충족을, 물질적 풍요보다 심신적 안일을 추구하는 뉴 브리드족으로 분류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자유와 자기충족 자기안일을 가장 가까이서 구속하는 아이들의 방임이 빠를수록 좋다고 하여 아이들이 슬하에서 떠나가는 연령이 종전의 17~18세에서 급격히 하강하고 있다고 했다.

그 교수는 아프리카 채집민족인 튜소족은 3세만 되면 부모로부터 방임되었기에 극소수만 살아남고 죽어갔으며, 그로써 생존을 위한 인구조절을 해왔다고 말하고, 뉴 브리드족의 확산을 문명 속의 튜소족 증후군, 곧 현대판 내자식 죽이기라고 정의했다.

우리나라에도 내 자식 죽이기의 전통은 유구하다. 어릴 적 숨바꼭질할 때 장독대의 떡시루 속에만은 숨지 못하게 하는 터부가 있었다. 잦았던 전란이나 흉년으로 피난갈 때 기어다니는 아이를 이 떡시루에 가둬놓고 떠나야 했던 쓰라린 체험에서 생겨난 터부였다.

 

또 사내아이를 낳으면 병역 유예세라 할 군부포(軍保布)의 수탈을 피해 생매장한 사례도 허다했다. 염병앓는 아이를 집안에서 죽게하면 안 된다하여 업어다 수구문 밖에 버리거나 문밖 소나무 밑둥에 띠로 묶어놓고 죽어가게 하기도 했다. 가난한 집에서 음식을 두고 노모와 아기가 다투는 것을 보고 아기를 업고 나가 생매장하는 효자의 자식 죽이기는 ‘삼국유사’에 나온다.

이 모두 외적 요인으로 불가피했던 내 자식 죽이기요, 먹이기 고달프고 나 살기 힘들다고 헌 신발짝 강물에 내어던지듯 한 비인도 비인륜 행위는 아니었다. 경향의 산부인과병원에서 아기를 낳아두고 잠적하는 산모가 늘고 있다는 보도도 같은 맥락으로 우리나라에서 미국보다 먼저 튜소족증후군이 가속화하고 현실화되고 있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