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코너] 성탄옹과 조왕님
「기자님 나는 여덟 살입니다. 알고 싶은 것이 있는데 꼭 가르쳐주십시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정말로 있는 것입니까.」 버지니아라는 소녀가 미국의 뉴욕 선 신문사에 한 투서 내용으로 100여년 전 일이다.
너무 흔한 질문이요, 묵살해 버림 직한 이 소박한 질문에 이 신문은 애정이 담긴 사설로 응답을 했다. 「산타클로스가 오신다는 것은 결코 거짓말이 아니다. 이 세상에 사랑이 있고 남을 위한 배려가 있으며 서로가 믿고 살 수 있는 한 산타클로스는 분명히 있는 것이다」 했다.
이 글을 쓴 기자는 죽은 지 오래지만 이 사설은 고전이 되어 지금도 곧잘 회자되고 있다. 물질문명 합리주의의 풍조가 만연했던 당시 사회의 반동으로 이 회답은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던 것 같다.
산타클로스는 돈이나 물질 같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이 아닌, 서로간의 신뢰라던가 상상력과 시·사랑·로맨스 같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뿌듯한 것을 안겨다 준다고 사설은 소녀에게 말하고 있다.
이 소녀적 나이에 한국아이들도 같은 의문을 가졌었다. 섣달 그믐날 밤에 자면 눈섭이 희어진다 하여 못 자게 했는데 왜 눈섭이 희어지느냐고 집요하게 물었던 기억이 난다. 동짓날 상천한 조왕님이 그믐날 밤 내려오는데 자고 있으면 지난해 저지른 잘못을 뉘우치지 않은 것으로 보기 때문이라 했다.
산타클로스가 굴뚝 타고 들고나는 서양의 부엌신이라면 조왕님은 부엌에서 그 집안 식구의 언행을 연중 지켜보고 그 잘잘못을 치부했다가 동짓날 굴뚝 타고 상천, 옥황상제에게 고하고 응분의 이듬해 운수를 타고 그믐날 돌아오는 한국의 산타클로스다.
이 조왕님이 사주팔자에 찍는 일곱 가지가 당시 어린이들에게 알려져 있었는데 1)거짓말 하면 찍고 2)말을 바꿔하면 찍고 3)고자질하면 찍고 4)잘난 체하면 찍고 5)여기 저기서 하는 말이 다르면 찍고 6)속에 없는 짓하면 찍고 7)저만 생각하면 찍힌다고 알았다.
당시는 어린이들에게 적절한 지침이었는데 요즈음 우리 정치가들에게 꼭 들어맞는 조왕님의 치부지침이다. 문명의 발달은 인간을 유치하게 만든다더니 들어맞는 말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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