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가 골고다의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박히던 날 제자들은 모두 사람들에게 들킬까 두려워 숨어 있었다.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를 부정했고 야곱은 묘지의 토굴 속에 있었다. 한데 그 살벌한 현장에서 예수가 십자가에서 내려져 시신을 수습하기까지 전과정을 지켜본 여인이 있었다. 이튿날 시신에 향유(香油)를 바르고자 무덤에 들었던 바로 그 여인이요, 부활한 예수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도 이 여인 앞이었다. 그 여인이 바로 막달라의 마리아다. 창녀로서 회개하여 그 죄를 용서받은 것으로 알려진 막달라 마리아가 창녀가 아니라는 해석이 성서 속의 여인들을 재조명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고 근간 뉴스위크가 보도했다. 남성 중심의 중세교회에서 막달라 마리아의 비중이 막대한 데 대한 질투 때문에 창녀라는 오명을 씌웠다는 것이다. 신약성서에서 막달라 마리아가 창녀로 명시된 대목은 없다. 다만 일곱 악령에 사로잡혔던 죄많은 여인으로 나온다. 프랑스의 가톨릭 작가 모오략은 ‘허무와 육욕(肉慾)에서 차례로 탄생된 일곱 개의 죄’로 일곱 악령을 해석했다. 예수의 발에 향유를 쏟고 긴 머리로 닦고서 키스하며 죄를 뉘우치는ㅡ누가복음에 나오는 죄많은 여인의 정체나, 이름은 적지 않고 있으나 성서학자들은 이 회개하고 용서받는 여인을 막달라 마리아로 보고 있다. ‘마리아 막달레나’를 저술한 프랑스의 신학자 브룩베르제도 예부터 전해온 말을 전제로 동일인이라 했고 300만부나 팔렸다는 아워즐러의 ‘위대한 생애 이야기’에도 창녀로 암시돼 나온다. 16세기에 그려진 카라바조의 명화 ‘회개하는 막달라 마리아’에는 향유(香油) 단지와 기다란 장발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미루어 동일인임을 전제로 그린 것이다. 곧 회개에 대한 비중을 막달라 마리아로 하여금 부각시킨 것이지 남성 중심의 중세교회에서 여성으로서 예수에 너무 신앙적 접근을 한 데 대한 질투라는 설은 납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요한이 예수에게 기적을 추구했다면 막달라 마리아는 그리스적 지혜를 추구했다 할 만큼 성서학에서 재평가되고 있기도 한 막달라 마리아ㅡ그녀의 탄생지인 갈릴리호반의 미그달에 탄생을 기념하는 조그마한 교회가 있는데 인적이 뜸하고 막달라 마리아상에 거미줄이 걷히지 않고 있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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