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사
한영익 정치에디터
고독사란 단어는 장기불황을 뜻하는 ‘잃어버린 20년’을 맞은 1990년대 일본에서 탄생했다. 은퇴 이후 경제적 곤궁과 사회적 고립을 동시에 겪던 당시 고령층에서 아무도 모르게 생을 마감하는 이들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고독한 죽음을 맞는 이는 매년 3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고독사 현장을 전문으로 청소하는 특수청소업체는 물론 월세를 받는 집주인들이 고독사로 입는 손실을 보상해주는 고독사 보험까지 생겼다. 고독사를 고리로 하나의 산업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한국에는 아직 고독사 통계를 내는 명확한 집계 기준이 따로 없다. 보통 무연고 사망자를 고독사로 본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0년 580명이었던 무연고 사망자는 2015년 1676명, 2020년 2880명까지 늘었다. 지난해에는 3488명이었다. 폭발적인 증가세다.
고독사 현장을 정리하는 국내 전문업체 역시 늘어나고 있다. 일부 업체는 유품정리·특수청소 현장 영상을 촬영해 유튜브에 올리기도 한다. ‘반지하 17년 삶의 마지막’ ‘좁은 고시원 수납장에서 발견된 것은?’ 등의 영상은 대부분 조회 수 10만 회를 훌쩍 넘긴다. “고단한 이 세상 고생 많았다” “억장이 무너진다”며 고인을 추모하는 댓글도 수백개씩 달린다.
지난 19일에는 서울 양천구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40대 탈북 여성 A씨가 백골 상태의 시신으로 발견됐다. 계약 갱신 기한이 다가왔지만, 연락이 닿지 않자 서울주택도시공사(SH) 직원이 방문했다가 시신을 마주했다. 겨울옷을 입은 채여서 경찰은 그가 지난겨울 숨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의 죽음을 1년 가까이 아무도 몰랐다는 의미다. 2015년에는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역도 금메달리스트였던 김병찬 선수가 고독사로 사망한 채 발견돼 충격을 주기도 했다. ‘고독사 대국’이 머지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영국에서는 2018년 외로움 문제를 담당하는 장관이 처음으로 임명돼 주목을 받았다. 한국 국회도 2020년 3월 ‘고독사예방법’을 제정했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8월부터 서울·부산 등 전국 9개 시도에서 ‘고독사 예방 및 관리’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생의 마지막 순간마저 방치하는 사회가 지속 가능할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제대로 된 예방 대책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