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베테랑 플레이어

bindol 2022. 10. 28. 08:20
Opinion :분수대

베테랑 플레이어

중앙일보

입력 2022.10.27 00:35

송지훈 기자중앙일보 스포츠팀 차장 구독
 

송지훈 스포츠디렉터 차장

프랑스어 ‘베테랑(veteran)’은 어떤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해 기술이 뛰어나고 노련한 사람을 일컫는다. 단순히 경력이 길거나 나이가 많다는 느낌을 넘어 일정 수준의 이상의 실력을 인정받는 전문가로서 오랜 경험을 쌓았다는 뉘앙스가 강하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는 베테랑의 어원이 등장한다. 로마제국 군인은 20년 가까이 복무한 뒤 마흔 살 즈음에 퇴역했는데, 그중에서도 부대 운영 및 작전 수행에 필요한 여러 역량을 두루 갖춘 퇴역 군인을 ‘베테라누스(veteranus)’라 불렀다고 한다. ‘오래됨(old)’을 뜻하는 라틴어 ‘베투스(vetus)’에서 파생된 말로, 후대로 건너오며 베테라누스를 거쳐 베테랑으로 간소화됐다.

‘경험이 풍부한 퇴역 군인’을 지칭하는 베테랑이 스포츠에도 쓰이기 시작한 건 1800년대 중반부터로 추정된다. 오랜 기간 일정 수준 이상의 경기력을 유지한 선수를 존중해 쓰는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경험과 실력에서 우러나온 리더십으로 후배 선수들을 이끄는 존재이자 경기 중 결정적인 플레이로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인물을 의미한다.

올 시즌 프로축구 K리그에선 이청용(34)이 베테랑의 품격을 보여줬다. 소속팀 울산 현대가 라이벌 전북 현대를 누르고 지난 2005년 이후 17년 만에 K리그를 제패하는 과정을 진두지휘하며 시즌 MVP에 선정됐다. 한 시즌 내내 주장 역할을 맡아 선수단 분위기를 주도한 그에게 동료들은 “실력은 도사급, 인성은 엄마급”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한창 뜨거운 가을 야구도 베테랑의 품격을 만끽할 수 있는 무대다. LG의 김현수(34), 키움의 이용규(37) 등 백전노장들이 매 경기 팀 분위기를 다잡으며 플레이오프에서 묵직한 활약을 선보인다. 실책 하나에 희비가 엇갈리는 절체절명의 승부에서 경험과 자신감을 겸비한 선배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젊은 후배들에겐 천군만마다.

두 팀 중 한쪽이 한국시리즈 무대에 진출하면 맞닥뜨릴 SSG에는 ‘베테랑 끝판왕’ 추신수(40)가 있다. 전성기 시절 메이저리그를 주름잡은 야구 베테랑은 KBO리그 우승 트로피를 목전에 두고 벌일 ‘마지막 승부’에서 또 어떤 스토리를 써 내려 갈까. 각자의 무대에서 ‘경험의 가치’를 증명하는 베테랑 플레이어들의 분투를  응원한다.

송지훈 스포츠디렉터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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