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만장일치

bindol 2022. 10. 28. 08:18
Opinion :분수대

만장일치

중앙일보

입력 2022.10.25 00:28

이경희 기자중앙일보 이노베이션랩장 구독
 

이경희 이노베이션랩장

만장일치(滿場一致)란 모든 사람의 의견이 같음을 일컫는다. 국제기구의 전통적인 의사결정 방식은 만장일치제였다. 이는 약소국에 유리한 합의 방식이다. 불리한 결정에 구속되지 않도록 함으로써 모든 회원국의 주권을 절대적으로 존중해주기 때문이다. 언뜻 이상적으로 보이지만 국제기구 운영의 걸림돌이기도 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1920년 설립된 국제연맹은 제2차 세계대전을 막지 못했다. 만장일치제 때문에 한 나라만 반대해도 의결을 할 수 없었고, 군사적 제재수단도 없었다. 각국은 각자도생의 길로 치달았다. 2차 대전 종전 이후 설립된 국제연합(UN)은 국제연맹의 교훈을 바탕으로 만장일치제를 폐지한다. 다수결 제도와 각종 하위 기구, 상임이사국의 거부권 등을 도입해 실질적인 영향력을 확보한다.

미국 대부분의 주에선 형사재판 배심원단 만장일치 평결을 원칙으로 한다. 배심원 중 한 사람이라도 무죄라고 판단하면 유죄평결을 내릴 수 없도록 했다. 공정한 배심에 따라 평결받을 권리를 보장해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모두가 유죄를 외치는데 혼자 무죄라고 주장하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사회심리학자 솔로몬 애쉬의 ‘동조실험’은 다수의 틀린 판단에 따르는 현상을 보여준다. 답이 명확한 문제를 제시한 뒤 공모자들이 모두 똑같은 오답을 말하게 했더니 피실험자 10명 중 4명이 그에 동조했다.

만장일치는 자칫 ‘집단사고’로 흘러갈 위험이 크다. 합의를 지나치게 추구하는 나머지 다른 대안에 대해 현실적으로 평가하지 못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반대자들에 대한 합의 압박, 구성원의 자기검열이 증폭되면 비합리적인 판단으로 치닫게 된다. 『반대의 놀라운 힘』(청림출판, 2020)에 따르면 실제로 사람들은 반대의견을 내는 소수를 거부하고 응징한다. 직장인 10명 중 7명이 문제를 발견하고도 지적하지 않는다는 연구도 있다. 모두가 침묵하는데 혼자 보고했다가 동료들에게 조롱과 거부를 당할까봐 두렵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22일 중국 공산당 제20차 당대회에서 시진핑(習近平·69) 국가주석의 3연임과 종신 독재의 길을 여는 ‘당장’(黨章·당헌) 개정안이 만장일치 거수로 통과됐다. 집단사고를 제어할 최소한의 안전핀도 없는 초현실적 장면이었다.

이경희 이노베이션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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