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오리 박물과

bindol 2022. 10. 29. 10:09

[이규태코너] 오리 박물과

조선일보
입력 2003.10.23 17:04
 
 
 
 

선조 때 정승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을 기리는 박물관이 그의 고향인 광명시에서 오늘 개관한다.

유적과 유물을 보존한다기보다 오리의 인간적 후광을 현대에 비추는 광원(光源)으로서 부가가치가 큰 박물관이랄 수 있다. 택당(澤堂) 이식(李植)이 오리의 종사관으로 있을 때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상전의 당색(黨色)을 살펴보고자 말을 돌려 “율곡을 어떻게 보십니까?”라고 물었다.

율곡을 둔 평가로 당색을 가름해 보고자 함이었다. 대꾸를 사양하자 배신감을 느끼고 하직하기를 청하기까지 했다. 이에 말했다. “가령 두 사람이 취하여 때리고 욕하며 언덕 밑으로 구르며 싸울 때 한 사람이 말로 타일러도 듣지 않아 달라붙었다가 한데 섞여 밀고 당김을 면치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오리가 임진왜란의 난세에서 우뚝 솟아 백성의 여망을 몰아 나라를 이끌어간 것은 이 같은 초당적인 리더십 때문이었다. 이 같은 여망을 수렴하는 오리가 대망되는 작금이다.

그가 영의정으로 있을 때 살았던 집은 지금 서울대학병원 자리인 산중의 오두막이었다. 어느 날 퇴청하여 베옷을 갈아입고 돗자리를 짜는데 산지기가 나무 베던 아이를 잡아 공의 집에 맡기며 이 아이를 놓치면 옥에 갇힐 것이라 공갈하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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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어머니 방이 차가워 저지른 일임을 알고 공은 이 아이를 돌려보냈다. 이튿날 산지기가 포졸을 데리고 와 맡긴 아이를 내놓으라 횡포를 부렸지만 오리는 일절 영의정이라는 신분을 밝히지 않고 수습했다.

사는 집, 입은 옷, 돗자리 짜는 일로 권한을 극소화하고 권세를 티끌만큼도 드러내지 않은 인간적 크기를 요즈음 세상 어디에서 볼 수 있다는 말인가. 교동도에 유폐당해 있던 광해군이 땅을 파고 탈출하려던 사건이 있었다.

세자빈 박씨가 인두로 땅굴을 파나간 것이었다.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는 아부성 발언이 드센 조정에서 유일하게 지아비를 살리려는 인간성에 비중을 두고 용서해야 한다고 주장한 오리는 용기 있는 인간주의자다.

박물관의 유적 가운데 하나로 인조께서 내린 집 한 채가 있다. 두어 칸 집에 비바람도 못 가리고 산다는 보고를 받자 정승 수십년에 비바람도 못 가리다니ㅡ하며 내린 바로 그 집이다. 오리박물관은 그래서 박물관이 아니라 정치인이나 공직자에게 암묵의 정신정당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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