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프로야구와 저주

bindol 2022. 10. 30. 16:08

[이규태코너] 프로야구와 저주

조선일보
입력 2003.10.17 16:07
 
 
 
 

미국 프로야구 사상 최고의 영웅인 베이브 루스의 자서전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선수들 간의 미신으로 구장에 오고가다가 빈 통을 보면 그날 안타를 친다는 것이 상식이 돼 있었다. 담당심판이 할개눈이라든지 검은 고양이를 보아도 행운의 조짐으로 알았지만 빈 통 실은 수레를 보는 것만큼 확실한 행운의 보장은 아니었다. 자이언츠팀 전원이 타격 부진으로 고민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선수들은 부진을 떨쳐버리는 징크스로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땅에 던져도 보고, 방망이를 합쳐 눈감고 집어서 쳐보기도 했으며, 토끼 앞다리를 품고 출장하기도 했지만 부진을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빈 통을 가득 실은 마차를 보고 들어온 선수들이 전원 안타를 쳤고, 그 이튿날에도 빈 통을 보았다는 다른 선수들이 안타를 쳐댔다. 이렇게 1주일 동안 선수 숙소 앞을 빈 통 마차가 지나다니는 바람에 전 선수가 타격감각을 되찾았다.

그런 지 수일 후 허름한 청바지 차림의 마부가 숙소를 찾아와 거인팀의 맥그로 감독을 찾았다. 그동안 빈 통 나르는 운반료를 받으러 왔다는 것이었다. 감독이 미신으로써 미신을 제압했으며 이로써 승리했으니 그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하고 베이브 루스는 말하고 있다.

 

1918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보스턴이 1920년에 베이브 루스를 뉴욕 자이언츠에 트레이드한 이후 단 한번도 정상에 오르지 못했는데 이를 베이브 루스의 애칭을 따서 ‘밤비노의 저주’로 불러왔음은 알려져 있다. 그러했듯이 시카고팀이 1945년 월드시리즈에 나갔을 때 한 팬이 애완용 염소를 데리고 입장하려다 저지당하자 시카고 홈구장에서 월드시리즈는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욕설을 하여 이를 ‘염소의 저주’라 일컬어왔는데, 그 장구한 세월 동안 이 두 팀은 그 저주에서 풀려나지 못했고 올해도 극적으로 그 저주에 꼬리를 잡히고 말았다.

2년 전 보스턴의 열성팬이 라마승의 저주 풀이를 믿고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라가 보스턴 모자를 정상에 묻고 양키스 모자를 불태움으로써 저주를 푸는 의식을 올렸고, 엊그제는 시카고팀을 저주했던 분의 조카가 바로 그 저주의 혈통을 이어받은 염소를 데리고 구장에 나타나 저주를 푸는 의식을 베풀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하지만 저주 풀이로 해소시키기에는 너무 뿌리깊은 프로야구의 미신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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