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大山 愼鏞虎

bindol 2022. 10. 30. 16:29

[이규태코너] 大山 愼鏞虎

조선일보
입력 2003.09.21 17:34
 
 
 
 

베를린 아래 포츠담에 프리드리히 대왕이 말년을 살았던 무우궁(無憂宮)이 있다. 궁을 지을 때 바로 곁에 있던 한 농부의 풍차방앗간을 수용하려 했다.

한데 이 농부 기개가 대단했던지, 백성 것을 빼앗아 호화를 누리려 합니까 하고 나를 죽인 다음 풍차방앗간을 하십쇼 하고 목을 내밀고 버텼다. 대왕도 크게 느껴 축소설계를 했고, 이 풍차방앗간은 지금도 민권의 성지로 무우궁을 웃도는 관광명소가 돼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 무우궁과 같은 일이 벌어졌었다.

한국의 중심이 서울이요, 서울의 중심이 광화문이다. 별세한 교육보험 창시자 대산 신용호가 그 광화문에 22층 교보빌딩을 거의 다 올리고 있을 때 일이다. 어느 날 청와대가 내려보이는 곳에서 17층 이상 지을 수 없으니 건물을 자르라는 통고였다. 그래야 할 법적 근거는 없고 관행이 그러하다는 것이었다.

대산은 옛 선비들이 광화문 앞에서 도끼를 들고 상소하는 심정으로 읍소문을 청와대에 전달했다. “티끌만한 위법 없이 완성단계에 있는 이 건물의 허리를 자르라는 것은 대통령이 만든 법을 자르라는 것이요, 나아가 대통령을 자르는 행위가 됩니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대신 제가 지은 집이 아니라 광화문 복판에서 저의 배를 자르겠습니다.” 이 할복 의지로 대통령의 명예와 건물을 동시에 구제했던 것이다.

 

해방 후 중국에서 귀국한 대산은 무일푼이었다. 잇단 전쟁으로 온 국토에 널려 있는 고철이 유형재(有形財)라면 전쟁으로 배우지 못한 한(恨)과 자녀에게 그 한풀이를 하려는 교육열이야말로 무형재(無形財)가 아닐 수 없다. 남들은 고철로 돈을 번다지만 교육열로 돈도 벌고 나라를 살지게 하겠다고 마음먹고 좌우명인 ‘맨손가락으로 생나무 뚫기’를 시작한 것이다. 주변사람 거의가 냉소하는 이 교육열과 보험과의 접목(接木)으로 이 세상 다른 나라에 없는 교육보험을 정착시켜 놓은 대산이다.

외국 손님들이 한국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현장 0순위로 찾아가는 곳이 교보문고다. 기대서서 읽고 앉아서 베끼는 이 젊은이들의 열기에 압도당하고 마는 이 현장 창출도 그 한국 최고의 금싸라기 땅에 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책방을 고집한 대산의 기골(氣骨)이다. 이해를 초월, 미래를 생각하는 외곬의 기골경제(氣骨經濟)라는 개념이 있다. 한국 기골경제의 마지막 대산이요, 그 대산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