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섹스 숭배문화

bindol 2022. 10. 31. 08:30

[이규태 코너] 섹스 숭배문화

조선일보
입력 2003.08.31 17:23 | 수정 2003.08.31 19:34
 
 
 
 

옛 깐깐한 선비들 길 가다가도 방앗간이 나타나면 길을 짐짓 돌아갔다. 방아 찧는 행위가 성교행위를 유감(類感)시킨다는 것이 그 우회의 이유다. 길 가다가 흘레하는 개를 보거나 논둑길 가다가 업은 메뚜기만 보아도 집에 돌아와서 샘물 떠오라 시켜 부정 탄 눈을 씻었다. 이를 세안(洗眼)이라 했으며 우연히 음담패설을 듣거나 요염한 여인의 목소리만 들어도 돌아와 귀를 씻었으니 이를 세이(洗耳)라 했다.

서유구(徐有矩)의 「임원십육지」는 실학서적으로 18세기에 관습화돼 있던 성문화를 담고 있다. 그 과학 서적에 나타내지 않을 수 없는 여성의 국부를 「동리도화(洞裏桃花)」, 곧 뒷동네에 피는 복사꽃으로 미화했다. 관헌에서 범죄를 둔 조서를 쓸 때 남성의 성기를 「불인견지처(不忍見之處)」, 곧 참아 눈뜨고 볼 수 없는 곳으로 표현했다. 성기에 관련된 말을 입으로 하거나 글로 쓰는 것을 기피하는 기색(忌色)문화의 한국적 존재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옛날 법도 있는 가문에서 제삿술을 빚거나 제사 떡을 빚을 때면 부인네들은 조선종이로 코와 입을 막고 작업했다. 방출되게 마련인 여기(女氣) 때문에 신성 주식(酒食)이 부정 탄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랑방에 주인이 있는 동안은 집안에서 여인들은 노소 없이 살성(殺聲), 곧 소리를 죽여 말해야 했다. 가혹한 기색문화가 아닐 수 없다.

문화는 그러해야 한다는 당위성과 그 당위성에 때묻지 않은 순수성이 공존하는 표리구조를 하고 있어 시대에 따라 그 세력이 뒤움박질한다. 외래문화를 타고 든 성개방의 심화로 작금 한국의 기색(忌色)문화는 일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그 일환으로 억눌렸으면서 근근이 명맥을 이어온 전통 성문화를 집대성한 성 박물관, 성 사진전들이 열리고 경주 엑스포에서는 성 문화전의 코너를 마련하는가 하면, 국립 민속박물관장 이종철씨는 한국의 성 문화를 학술적으로 집대성한 연구서적을 발간해 한국 성 문화를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고들 있다. 거기에 보면 조상들 성교 포즈들이 다양하게 조각된 엽전이나 춘희자라는 성희 조각이 은밀히 유통됐는가 하면, 고도로 발달한 상징 춘화 등 섹스기피 뒤에 신선하게 와 닿는 섹스 숭배문화가 새삼스럽기만 하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