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육아 수당

bindol 2022. 10. 31. 08:40

[이규태코너] 육아 수당

조선일보
입력 2003.08.19 15:48
 
 
 
 

우리나라가 다산국(多産國)에서 세계 최저의 소산국(少産國)으로 추락하자 출산장려책으로 셋째 이상의 아이에게 육아수당을 지급한다는 법안이 성안되었다. 그 타당성 이전에 다산시절의 조건들을 되뇌어보는 것도 무위하지 않을 것 같다. 옛날에는 수당 없이도 아이 많이 낳는 부인들은 경제적 특혜가 컸다. 이를테면 논밭에 씨앗을 뿌릴 때 다산녀(多産女)를 사다 뿌리는 것이 관례가 돼 있었다. 농작과 다산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아이 많이 낳는 주력을 열매 많이 열리는 풍작과 유감(類感)시키는 원시사고에서 합리적이다.

밭 갈 때 나경(裸耕)이라 하여 아들 많이 낳은 장정 불러다가 하체를 노출시켜 논밭을 갈면 풍작이 들 것이라는 생각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이 다산남녀의 풍작(豊作)작업에는 보수가 주어지는데 자녀 수의 많고 적음에 따라 여느 품삯의 세 곱을 웃돌았다.

뿐만이 아니다. 일제 때까지만 해도 전당포에서 다산녀의 옷은 베옷일지라도 비싼 값으로 잡아주었다. 치마보다 속곳이 비싸고, 속곳보다 개짐(월경대)이 값이 많이 나갔다. 이처럼 다산녀 자체가 재물이었다. 이 경제적 부가가치는 유전되어 만약 다산녀의 딸이 불행해져 씨받이 부인으로 전락했을 때 그 씨받이값은 볏섬이 아니라 논 마지기로 흥정되었다.

 

육아수당 없이도 다산이 선망받았던 배경은 이렇다. 재산상속 혈연상속 제사상속의 주체인 사내 아들이 꼭 필요했다는 것과 대여섯 살만 되면 어떤 형태로든지 수입가계(收入家計)에 도움을 준다는 경제적 가치, 천재지변만 없고 근면하기만 하면 형제 간 이웃 간에 상호부조하여 제명대로 살다 죽는다는 원천적인 안심(安心)이 애 많이 낳는 데 저항을 주지 않았다. 한데 지금은 형제나 이웃의 상호부조에서 소외되어 불안하고 살림을 도왔던 대여섯 살부터 거액의 교육비 과외비가 드는 데다 20∼30대까지 지출가계 속에 키워야 하니 생계가 버겁고 예상 못한 경제적 정치적 불황이 끝바꿈하여 아이낳는 데 불안을 중첩시킨다. 인생의 과반이 의존인생이라 결혼과 독립을 기피하고 만혼으로 불임이 기하급수로 늘어난다. 호주제의 불안정으로 굳이 아들 낳을 필요가 없어진 것도 아이 적게 낳으려는 저의로 작용한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육아수당은 언 발에 오줌 누기임을 알 수 있다.

(이규태·kyoutaelee@chosun.com)

'이규태 코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규태코너] 프리터族  (0) 2022.10.31
[이규태코너] 골프 대디  (0) 2022.10.31
[이규태코너] 다듬이 심리학  (0) 2022.10.31
[이규태코너] 동독 향수  (0) 2022.10.31
[이규태코너] 커진 유방  (0) 2022.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