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골프 대디

bindol 2022. 10. 31. 08:41

[이규태코너] 골프 대디

조선일보
입력 2003.08.18 15:51
 
 
 
 

20여년 전 한국인 교포가 미국아이의 고추를 만진 것을 성추행이라 하여 미국 법정에 선 일이 있다. 이때 미 법정의 요구에 따라 한국에서 아이들 고추 만지는 행위의 문화적·관습적 사례와 그 심리적 배경에 대해 진술서를 써보낸 적이 있는데, 세상이 좁아질수록 지역적으로 형성된 고유 문화끼리 충돌과 갈등을 빚는 경우가 잦았고 앞으로 더욱 잦아질 것이다. 세계 여자 골프에서 두각을 드러낸 앳된 한국 아가씨들이 온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는 가운데 전에 없던 한국인 갤러리의 매너가 비난의 표적이 되고 있는 것도 그런 것 가운데 하나다.

참관하는 선수의 아버지들이 경기 중인 딸들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관여하는 것은 불법일 뿐더러 서양사람들의 비위를 건드린다. 많은 한국 아버지들이 남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한국말로 관여를 하고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공에 손을 대기도 한다 하여 여론화가 됐었다. 그리하여 캐디말고 골프장의 ‘대디’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큰 대회마다 한국 아가씨들이 휩쓰는 데 대한 은근한 투기가 깔려 있기도 하고, 보다 차원을 높여 보면 이 대디현상은 하나의 문화갈등(文化葛藤)이랄 수 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딸들이 고등학교만 나오면 아버지에게 차비만 얻어 들고 도시로 나가 독립을 한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에 카드로 소식을 전하는 것이 고작이다. 인생의 진로에 자문은 할지언정 관여는 하지 않는 분명한 부녀 간 이원분리(二元分離)를 한다. 인생의 진로도 맡겨두는데 하물며 골프공의 진로임에랴.한데 한국에서는 부녀 간이 동일체로 심리적 이유(離乳)를 하지 않고 산다.

전통 사회의 부녀 간 덕목을 지배한 내칙(內則)에 아버지가 시키면 먹기 싫고 입기 싫어도 먹고 입어야하고 분부하는 일이 당치 않아도 거절 못했다. 흔히들 누구 닮아서 저런가 하고 말하듯이 자녀는 나 자신이 아니요 부모로부터 미분화된 존재며 아녀자(兒女子)라 하여 법적 도덕적 책임도 아버지가 졌다. 그리하여 시집간 후에도 여차하면 찾아가 내딸 내놓으라고 발악하지 않던가. 이 같은 부녀 결속문화의 유전질이 남아 있는 아버지들이 딸이 굴리는 골프공에 관여하려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노릇이다. 무섭게 좁아지는 세상에서 앞으로 얼마나 많은 문화갈등을 겪어야 할지 모를 일이다.

(이규태·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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