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다듬이 심리학

bindol 2022. 10. 31. 08:39

[이규태코너] 다듬이 심리학

조선일보
입력 2003.08.20 17:02
 
 
 
 

경주 문화엑스포 개막식에서 천마(天馬)의 소리를 연상케 하는 다듬이 소리를 주제로 한 퍼포먼스가 눈길을 끌었다. 그 더욱 외국사람들에게 인상적인 것은 외국인에게 생소한 한국미의 한 유형으로 생활 속의 일상적인 도구로 미를 창출했다는 점이다. 이미 주방의 잡다한 도구들로 세상의 눈길을 끌었던 난타 공연이 그렇고 이번 경주엑스포에서 피로된 다듬이 퍼포먼스가 또한 그러하다. 다듬이는 옷감을 다듬는 도구가 아니라 한국여인의 심정을 표출하는 심금이라는 편이 옳다. 옛날 도리깨질로 콩 타작하는 타작마당을 보고 머슴들의 속마음을 낌새쳤었다. 콩이 타작마당에 얼마만큼 깊이 박혔나로 무의식 중에 힘이 들어간 돌이깨질에서 상전을 둔 불평불만의 깊이를 알고 조용이 불러다 그 속마음을 묻곤 했던 것이다.

머슴에게 그러했듯이 며느리나 계집종을 둔 어머니들에게 숨은 마음을 살피는 두 가지 수법이 있었다. 그 하나는 강아지 깨갱거리는 소리다. 불평불만을 우회 분출시키는 편리한 수단이 부엌에서 졸고 있는 무고한 강아지 뱃대기 차는 일이기 때문에 그 깨갱거리는 소리의 강약으로 그 불평불만을 가늠했다. 둘째는 다듬이질할 때 그 내려치는 소리인데, 그 강약이 며느리나 계집종의 숨기고 있는 심정을 정확하게 대변했다. 어머니들은 비단 내집 다듬이 소리뿐 아니라 동네 다듬이 소리로 그 집 며느리나 종의 심정을 가늠했던 것이다.

이처럼 다듬이 소리는 한국여인의 심정교향곡이다. 그네들은 가부장에게 억눌리고 삼강오륜에 억눌리고 죽은 조상에게 억눌리고, 시어머니 시누이 시집식구에게 억눌려 온통 억압뿐인 가운데 누적되고 팽창하기만 하는 스트레스의 압력에 압도당하며 살아야 했다. 그것이 분출되지 못하고 삭으면 한이 되고 원이 되었으니, 그게 응어리가 되어 죽어도 죽지 못하고 영원히 중공을 울며 헤매야 했다. 원한이 되기 전에 분출시키는 수단이 다듬이질이요, 다듬이 소리가 깊은 밤일수록 요란한 것은 그것이 노동이 아니라 스트레스 분출의 정신작업이기에 그렇게 요란스럽고 뭣인가 속삭이는 듯 들리는 것이다. 그것이 심정에 별나게 와닿는 것도 그 소리에 서린 한의 역학 때문일 것이다. 이 심정을 교향하고 형상미로 어우르는 다듬이는 세계적 이목을 집중시킬 새로운 한국미의 발견이 아닐 수 없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이규태 코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규태코너] 골프 대디  (0) 2022.10.31
[이규태코너] 육아 수당  (0) 2022.10.31
[이규태코너] 동독 향수  (0) 2022.10.31
[이규태코너] 커진 유방  (0) 2022.10.31
[이규태코너] 캘리포니아 선거  (0) 2022.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