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코너] 국화 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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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이현산( 縣山)의 약수는 고금에 유명하다. 위(魏)나라 문제(文帝)의 칙명으로 그 수원을 찾았더니 한 암자에 자동(慈童)이라는 이가 살고 있었다. 고대 주(周)나라 목왕(穆王)의 몸심부름하던 이로, 황제의 베개를 넘었다는 불손으로 이곳에 유배당했는데 국화꽃이 져 흐르는 이 개울물을 마시고 살았더니 이토록 700수(壽)를 넘겼다 했다.
문헌 ‘포박자(抱朴子)’에도 이 이현산의 국화수 이야기를 싣고 이 물을 마시면 150세는 거뜬히 살며 단명해도 90세는 넘겨 산다 했다. 그 기운을 마시면 장수하는 국화인지라 그 기운을 맡아도 장수할 것이라는 발상은 자연스럽고, 그래서 국화꽃 말려 만든 국침(菊枕)이 탄생한 것이다.
‘보생요록(保生要錄)’이라는 중국 문헌에 약침방(藥枕方)이 나오는데 국화꽃에 궁궁이·방풍·서각·창포를 검은콩 5홉에 섞어 비단 주머니에 담아 베개를 만든다 했다. 국화는 황국이 좋고, 들국화일수록 효력이 나며, 베고 자길 한 달이면 두통이나 현기증을 낫게 하는데 그 약기운이 다섯 달에 다하기에 갈아 베야 한다고도 했다.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의 ‘고려도경(高麗圖經)’에 향침(香枕)에 관한 견문이 나오는데 아마도 이것이 국침에 대한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이 아닐까 싶다. 항간의 민속으로 늦가을에 황국을 따 응달에 잘 말려서 메밀 껍질과 섞어 붉은 베에 담아 베개를 만드는데, 향기가 그윽하고 눈과 머리를 맑게 해주며 어질러진 머리를 가지런히 해줄뿐 아니라 근심 걱정으로 무거운 머리를 가볍게 해주는 것으로 알았다.
헌종 때 시인 조삼수(趙秀三)의 ‘국침’이란 시가 있는데 현기증이 심해 온갖 약을 써도 효험이 없더니 국침을 만들어 베었더니 몸이 가뿐해지고 두 눈이 밝아지며 머릿속의 잡생각이 말끔히 가시고 마치 목욕하고 난 듯한 개운한 기운이 온몸에 번진다고 읊었다. 정몽주가 평생 술을 입에 대지 않다가 국화꽃 띄워 처음 마셨다듯이, 옛 조상들 지조를 지킬 때 국화꽃잎 술에 띄워 마시거나 말려서 베고 누워 코로 맡았으니 국화는 선비정신을 보존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전 청와대 간부의 청주 향응사건과 연관되어 국화 베개 7개가 청와대 창고에서 사장되고 있다 하니 그같은 경로로 국화 베개가 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기에 그 내력을 살펴 보았다.
(이규태·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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