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코너] 대통령 통치학
우리나라에도 대통령학을 전공하는 학자가 있고 책이 나오기도 했다. 대통령학 연구소도 있고 예비 대통령들을 고객으로 하는 벤처기업까지 생겼다. 학문하는 데도 관련자료가 보다 많을수록, 보다 자상할수록 좋다. 한데 통치자료는 부정적 평가를 받을 소지가 있으면 없애거나 숨기거나 변조하기 일쑤이기에 후대를 위해 도움이 못 돼 왔다. 김대중·김영삼·전두환 전 대통령의 통치자료들을 기증받은 연세대에서는 노태우·최규하·박정희 전 대통령의 자료도 교섭, 통치학의 연구센터로 키워나갈 참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중국에는 통치에 지혜를 주는 역대 제왕들의 치적과 그에 대한 잘잘못을 비판한 논찬(論贊)을 가한 북송 사마광(司馬光)의 ‘자치통감(資治通鑑)’이 있다. 그는 황제의 정사를 간(諫)하는 자리에 있으면서 통치자가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정치학 전례집(前例集)이나 정치학 교과서랄 제왕학(帝王學)의 필요를 절감하고 지은 것이다. 자신의 의견뿐 아니라 고금의 명사들을 총동원시켜 논찬을 삽입, 제왕의 통치마인드에 균형을 잡아주고 있다. 이를테면 당나라 덕종 때 풍년으로 백성의 살림이 유복해졌다는 관변의 보고를 듣고 사냥가는 길에 들른 여염집의 사는 것과 크게 다른 것을 두고 관변 언로의 폐단을 비판한 것이며, 임금이 정치할 때 쓰는 면류관이 주렴으로 눈을 가리고 솜방울로 귀를 가리는 저의는 눈앞이나 가까이에서만 보고 듣지 말고 먼 곳의 민심 민정을 듣고 보라는 뜻임을 일깨우고 있다.
조선조의 왕조실록도 통치학 구실을 자임, 실정(失政)도 기탄없이 기록하는 것을 법도로 삼았었다. 세종대왕은 파란 많은 태종실록이 완성에 가까워지자 보고 싶다는 뜻을 비쳤다. 이에 우의정 맹사성(孟士誠)은 “전하가 보시더라도 아바마마 태종을 위해 고치지는 못할 것이요, 한번 보면 후대에 임금들이 본보기로 하여 사관(史官)이 사실대로 쓰지 못하게 될 것”이라 하여 거절했다. 그 후 이 법도는 지켜내리지 못해 자치통감으로 구실을 못했으며, 대통령 자신들이 보유해온 대통령 통치학 자료들도 이 용비어천가식 테두리를 못 벗어날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통치학에 요구되는 것은 기증된 자료만이 아닌 가차없는 비판을 뒷받침하는 방계 관련 자료도 아울러 수집하는 일인 줄 안다.
(이규태·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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