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돈스코이號

bindol 2022. 11. 2. 06:13

[이규태 코너] 돈스코이號

조선일보
입력 2003.06.05 19:29
 
 
 
 

건도(建都) 300돌 잔치가 막바지에 오르고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그
도시 복판을 흐르는 네바강변에 관광용 군함 한 척을 정박시켜 놓았다.
볼셰비키 혁명의 횃불을 올린 기념현장으로 성역화하고 있지만 혁명
이전에는 러시아 함대가 일본 함대에 대패한 증거로 국민의 의분과
결속을 도출하려 도망쳐나온 순양함 오로라호다. 1904년 동해 울릉도
인근 바다에서 러시아와 일본 간에 벌어진 대해전에 참전했던 8척의
순양함 가운데 4척이 침몰하고 필리핀으로 도망친 3척의 순양함 가운데
하나가 오로라호며, 나머지 한 척이 선원들을 보트를 타게 하거나 헤엄쳐
울릉도에 상륙할 수 있게끔 근해까지 와서 해저판을 뜯어 스스로
침몰시킨 돈스코이호다.

돈스코이호는 가장 오래되고, 따라서 속도가 느려 선체에 여섯 발의
포탄을 맞고 그 중 한 발은 보일러를 관통했으며, 석탄도 탄약도 다
떨어지고 선장도 중상을 입고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지구의 반 바퀴를
도는 대원정의 군자금을 실은 경리함 나히모프호가 침몰하면서
군자금으로 싣고 온 막대한 금괴를 돈스코이호에 옮겨 실었기에 그
금괴가 100여년 바닷속에 묻혀있다고 여겨온 것이다. 어디에다 근거를 둔
것인지 100조원으로 추정되는 금괴를 간직한 보물선이라 하여
한국해양연구원에서 2년 동안 탐사 끝에 돈스코이호로 추정되는 선체를
발견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만한 금괴를 찾아낸다면 러시아와 소유권을 둔 분쟁이 예상된 대로
횡재가 되겠지만, 의문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울릉도 근해에 침몰한
러시아 전함이 8척, 그리고 순양함만도 4척이나 되는데 발견 함정이
돈스코이호인가 여부도 미지수고, 전장에 나가는 배에 그만한 재를
실었을 이유며 그만한 보물을 가장 낡고 속도도 느린 돈스코이호에 옮겨
실은 이유도 아리송하다. 이 함대가 싱가포르에 기항했을 때 한 병사의
고국에 보낸 편지에 보면 로젠스키 함대사령관 식탁에 커피를 낼 수 없을
지경이며 병사들의 필수 보급품인 담배·성냥·비누 보급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리상 곤궁을 겪고 있는데 군자금이나 전비(戰費)에 쓰려는
금괴였다면 그 보급품 조달이 가능한 싱가포르에서 그토록 곤궁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허황된 꿈에 부풀어 있는 것을 서양에서 '해저
보물선'이라 빗댄다던데 그렇게 되지 않기를 기대해 보는 것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