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종묘의 성기(性器) 설치전(展)

bindol 2022. 11. 2. 06:12

[이규태 코너] 종묘의 성기(性器) 설치전(展)

조선일보
입력 2003.06.06 19:32
 
 
 
 

법도 있는 집안에서 제사 떡을 빚을 때 부녀자들은 창호지로 입을 막고
작업하는 것이 관례였다. 여자의 입에서 뿜어지는 색기(色氣)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사랑채에 바깥어른이 있으면 안채에 있는 부녀자들은
소리내어 말해서는 안 되기에 함구언(緘口言)이라는 귓속말로 소곤거려야
했다. 여자의 색을 기피하는 횡포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여색을
멀리하고 피하는 기색(忌色)은 한국 전통 지배층의 존재이유요 의무였다.
하물며 성기나 성행위임에랴.

선비들 길 가다가 암탉이 수탉 업는 것을 보거나 메뚜기 업고 뛰는 것만
보아도 발길을 돌려 집에 돌아와 눈을 씻는 세안(洗眼)을 했다. 길
가다가 방아찧는 소리만 들어도 돌아와 귀를 씻는 세이(洗耳)를 했던
선비도 있었다. 요형(凹形)의 절구통에 철형(凸形)의 절구질은 성행위가
연상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선조 때 한양 운종가에서 아내의 간통을 적발한 남편이 아내의 국부를
돌로 쳐 죽인 살인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을 다룬 관부에서 조서를
꾸미는데 국부의 표현문구를 두고 고민하였다. 아무리 법문서라지만 국부
같은 천한 말을 쓰는 것은 선비정신을 오염시키는 것이 되기 때문이었다.
이에 오일섭이라는 이가 적정한 아이디어를 냈다. '모가 나지 않은 돌로
차마 눈으로 볼 수 없는 곳을 쳐 죽였다(以無方之石 打殺不忍見之處)'고
써올렸고 불인견지처는 여자의 성기를 나타내는 법문서의 본이 되어
내려왔던 것이다. 한국 기색(忌色)문화의 걸작이 아닐 수 없다.

 

기색은 전통 엘리트 문화의 핵심이요,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안이다. 이
엘리트 문화를 가장 확실하게 현실에 유지하고 있는 공간 가운데 하나가
역대 임금의 제사를 지내는 종묘다. 그 종묘의 권위에 도전, 여자성기며
자궁의 설치물을 종묘에 전시해 앉아보고 들어가 보게도 하는
'아방궁'(아름답고 방자한 자궁) 표제의 해프닝이 신구 성의식에
갈등을 빚고 있다. 도전받은 유림이 전시물을 훼손하고 방해하자 소송을
했고 법정은 아방궁의 손을 들어주었다.

성기 설치 전시는 법률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요, 전시물이 불쾌감은 줄
수 있으나 타인의 명예를 침해하지는 않았다고 본 것이다. 이
신구대결에서 전통 가치관이나 규범들은 법률의 보호 밖에서 피 흘리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 많이 흘릴 것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