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논문 대필업
우두를 도입한 의학자 지석영(池錫永)의 형으로 지운영(池運永)이라는
재사가 있었다. 흔히들 시(詩)·문(文)·서(書)·화(畵)에 뛰어난 사람을
사절(四絶)이라 하는데 지운영은 선(禪)·광(狂)·치(痴)·혜(慧) 사절이
더하여 팔절(八絶)로 불린 재사였다. 다만 돈버는 데에만 무능하여
가회동 언덕바지 벽이 무너져 바람이 드는 허름한 집에서 끼니를
걸러가며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내장원경(內藏院卿)인 친구 이인우가
찾아와 옷을 차려입고 나오라고 했다. 해진 갓에 기운 도포 자락을
걸치고 나와 걸으면서 "어디를 가느냐"고 물으니 "자네 팔자 펴줄
사람 만나러 간다"고만 말할 뿐이었다. 말하지 않으면 가지 않겠다고
송현고개에서 버티자 "세도의 중심인물 가운데 하나인 민(閔) 판서가
불러서 가는 길"이라면서, "그의 조카가 진사회시(進士會試)를 치는데
답안의 대필을 부탁할 것일세" 했다. 천하의 명문장이요 천하의
명필인지라 장원급제를 노린 것이요, 그 대필로써 이 한사(寒士)는
팔자가 피게 돼 있었다. 이에 지운영은 선비 때묻히는 일이라며 단칼에
거절하고 돌아섰다. 그러자 민 판서는 '가문의 출세를 잃었지만
참선비를 얻었다' 하고 좋아했으며, 그가 대신이 됐을 때 지운영을
주사로 특채, 그 참선비의 기개를 높이 샀다.
이처럼 기강이 무너지고 세도가 판치는 세상에서는 세도를 영속시키고자
자식들을 대필로 급제시키는 것이 상식이 돼 있었다. 이미 대필한
권지(卷紙)를 숨겨들고 과장에 들어가 바꿔치기해서 제출했기로 이
과거부정을 환권(換卷)이라 했으며, 환권으로 얻은 벼슬을 속칭
환권진사·환권참판·환권판서로 지칭했다.
이 과시(科試)환권의 현대판인 각종 학위 논문 대필업이 성황을 이루고
있어 검찰이 검거에 나섰다는 보도가 있었다. 서울에만 30~40곳이 있어
인터넷을 통해 지식 암거래를 해왔는데 학사학위 논문은 50만원,
박사학위논문은 500만원으로 정가가 매겨져 있다 한다. 문제는
대필업자가 지운영만한 재사라면 모르되 여기저기에서 자투리 지식을
끌어모으는 짜깁기 도사들이라는 것과, 그 품질미달의 논문들이 버젓이
통과하여 환권박사·환권석사·환권학사들이 출세에 덕을 보고 있다는
점이다. 함량미달이 국가신용도뿐만 아니라 학문신용도마저 마이너스로
추락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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