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釋一行

bindol 2022. 11. 7. 18:18

[이규태 코너] 釋一行

조선일보
입력 2003.03.20 20:05
 
 
 
 


이웃집 아저씨 같은 정감이 흐르는 용모나 한국인의 심정에 거부감 없이
와 안기는 언행으로 친근해져 있는 스님에게 틱낫한이라는 이름은
낯설기도 하려니와 외우기도 까다로우니 한국인에게 익숙한 한문 법명을
쓰면 친근감이 더할 것 같다고 했더니 틱은 불성을 뜻하는 석(釋)이요,
낫한은 오로지 한 가지 일에 저념한다는 일행(一行)이라 써주었다.
'관경소(觀經疏)'라는 불경에 보면 만 가지 소망을 이루는 한 가지
일에 전념한다는 것은 바로 염불이라 했다. 한국에 온 베트남의 틱낫한
곧 석일행 스님의 저서들이 많이 팔리고 움직이는 곳마다 사람들이
모여드는 이유가 무엇일까. 스님의 저서를 읽어 보면 불교색채가 별반
드러나지 않는다. 마음의 꽃밭을 가꾸라고 설법하셨는데 정작 스님의
꽃밭에서 연꽃을 찾아볼 수 없다하니 불교의 교리가 현실화하면서
자연스레 탈색된 때문이라 했다. 내세(來世)구제의 종래불교를 스님은
현세(現世)구제로 탈바꿈하여 화며, 불안이며, 근심걱정을 해소시키는
친근 불교로 만든 것이 구심요인일 것이다.

십수년 전 미국에서 불교연구기관으로 가장 규모가 크다는 나로파
연구소를 찾은 적이 있다. 중국이 티베트를 무력 병합했을 때 망명,
옥스퍼드에서 서양학문을 거친 라마승이 이룩한 도장으로, 미국에
좌선(坐禪)·초월명상·하렉리슈나운동 등 동양회귀 현상이 기승을
부리는 이유를 그 스님이 설명해 주었다. 첫째, 60년대에 신이 죽은 다음
그 인격적 만남에서 소외당하고 있는데 차선적인 권위자인 아버지마저
죽고 차차선적 권위자인 스승마저 강의를 마치면 제자들의 평가를
받아야하리만큼 왜소해져 허전해진 그 공백을 메우고자 속계와 거리를 둔
초월 경지에서 무엇인가 찾고자 한다는 것이다. 둘째, 고속화에서 느림의
문화가, 복잡화에서 단순화가, 기계화에서 자연회귀가, 과당경쟁에서
게으름 같은 반문명 행위가 상생(相生)하고 있는 데다 유럽종교에 대한
실망이 동양종교의 초월경지에 이르는 실천방법을 추구, 좌선을 하고
금욕생화에 들고 종교성 단체생활에 몰두하게 된다고 했다. 틱낫한 붐은
바로 이 같은 사회현상이 한국에 회오리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 된다.
'나의 전생은 한국의 산사(山寺)가 분명하다. 독경이며 좌선이 낯설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그렇다.' 석일행(釋一行) 바람도 그래서 인연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