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내 친구 B 교수가 강연 청탁을 받고 ‘인생은 공수래공수거인가?’라는 제목을 걸었더니 젊은 학생들도 많이 참석했더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 교수가 80대 초반에 세상을 떠났다. 나도 문상을 갔다가 ‘정말 빈손으로 갔는가?’ 하고 물어본 일이 있다.인간은 누구나 빈손으로 태어난다. 그러나 갈 때에는 빈손으로 가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 수가 많지는 않다.
어떤 사람이 빈손으로 가는가? 인생을 육체적 욕망을 위해 사는 사람은 빈손으로 가게 된다. 그런 사람들은 삶의 영역과 한계를 신체적 범위 안에서 마감하는 사람들이다. 인간의 정신적 가치와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동물들은 본능적 욕망은 있으나 소유하지 않는다. 그런데 인간은 정신적 욕망까지도 동반하기 때문에 소유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이가 있다. 그 결과는 명백하다. 내 신체의 종말과 더불어 빈손으로 가게 된다.
돈과 재물을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큰 집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며 자랑스러울 정도로 치부했다고 해도, 갈 때는 빈손으로 간다.
정신적 가치를 이해하는 사람도 물질이 아닌 명예욕의 노예가 되면, 그 명예를 소유하려는 유혹에 빠진다. 명성, 인기, 명예가 삶의 목표가 되거나 명예를 얻기 위해 수단 방법까지 가리지 않는 사람은 정신적으로도 빈손으로 가게 된다. 명예를 탐내다가 치욕스럽게 생을 끝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우리가 같은 조건 속에 살면서도 빈손으로 가지 않는 길이 있다면 그런 삶은 어떤 것인가? 무엇을 소유한다는 것은 인간의 더 값있는 삶과 인격을 위한 수단과 부수적 가치에 속하는 것이지 인생의 전부도 아니며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사람은 차원 높은 인생관과 가치관을 찾아 누려야 한다.
재물도 그렇다. 나를 위해서는 적게 소유하고 더 많은 것을 이웃과 사회에 베풀 수 있을 때 경제적 가치를 누릴 수 있다.
권력의 가치와 목적도 내가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모르는 지도자 때문에 사회는 불행해지며,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어야 한다. 삶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권력은 봉사와 섬김을 위한 의무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권력에 대한 소유욕 때문에 자신도 불행해지고 그 사회도 병들게 되는 사례를 어디서나 보고 있다.
명예는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참다운 명예는 많은 사람을 위한 봉사와 희생의 대가이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받을 수 있는 삶이 안겨주는 정신적 선물인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다 같이 빈손으로 왔으나 빈손으로 가지 않는다. 사회와 역사에 남겨주는 희망과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그런 이들의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지 않은가?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 지난해 인촌상 교육부문 수상자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98세 노학자의 혜안을 공유하는 칼럼을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