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밝혔다고 칭찬했던 공직자 폭로, 집권 뒤에는 “反국가 행위” 고소
언제 끝날지 기약없는 적폐청산… 이제는 국민들이 의심의 눈초리
대화 협력 아량 갖춘 정부 되기를
대통령과 정부의 선택과 판단은 역사적 동일성과 일관성을 부정하는 것 같았다. 여당 지도부의 발언은 국가와 국민을 위하기보단 정권을 옹호하고 지지하는 데 있었다. 그들이 야당에 있었을 때는 용납할 수 없는 불의와 사회악이라고 공박했던 사건들이 집권 후에는 정당시되는 것이 보통이다. 국가와 진실을 위한 행위를 한 공직자들이라고 칭찬했던 사람들을 집권 후에는 불법과 반국가적 질서 파괴자라고 고소한다. 정의는 국가와 민족을 위한 가치이지 정권에 따라 바뀌는 도구가 아니다. 동일한 사건이 우리에게 유리하면 정의이고 불리하면 불의와 악이라는 논리는 성립되지 못한다. 국민의 선택과 가치판단의 기준은 윤리적 규범과 역사적 전통에 따른다. 한 정권의 의도대로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구체적인 문제도 그렇다.
박정희 정권 때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을 비롯한 노조의 활동을 억제하고 탄압했다. 인권유린이라고 평가받기도 했다. 아마 박 전 대통령은 남로당원이었을 것이다. 당원이면 그들만이 추종하는 철학이 있다. 노조는 공산정권이 집권할 때까지는 파업을 한다. 그러나 정권을 장악한 후에는 절대로 투쟁이나 파업을 하지 않는다. 그 교조를 잘 아는 박정희 정권은 노조 활동을 탄압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경제적 목적을 위해 정치적 과오를 범했던 것이다.
지금의 민노총도 장단점이 있다. 그러나 국민은 모든 노조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양보도 하고 협력할 줄 아는 애국적 공동체이기를 원한다. 민노총이 촛불시위의 공로를 보상받기 원하며 기업체 내의 세습적인 인사행정까지 강요한다면 그것은 집단 이기주의적 발상이다. 비(非)노조원에게 압력을 가하기까지 한다면 법치사회에서는 허용할 수 없는 사회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가 민노총과 동지애를 갖고 국민에게 임한다면 국민은 대통령에 대한 불신과 정부에 대한 거리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도 그렇다. 교육은 항상 보다 선한 방향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특정한 목표를 위한 일방적인 과정과 방법은 금물이다. 종교나 정치이념을 위한 교육에 치우치면 인간의 자유로운 창조성을 약화시키거나 잃게 된다. 그런데 주변의 전교조 활동을 보면 교육의 보편적 가치보다는 주어진 정치이념을 위한 노조 활동을 앞세운다. 정신적 가치의 획일성과 교육적 가치의 평준화는 교육 자체를 불행과 파국으로 이끌 수 있다. 나치 독일과 공산주의 교육이 사회를 병들게 한 원인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정부가 교육을 행정규정에 맞추기 위해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면 정신문화의 육성과 발전을 저해할 뿐 아니라 민족의 정신문화를 병들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교육은 정부의 후원은 필요하나 통제를 받아서는 안 된다.
문제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있다. 정권 초창기부터 시작한 적폐청산은 임기 말까지 계속할 모양이다. 그 목적이 어디 있는지 국민은 의심한다. 북한에서 체험했고 소련과 공산 중국의 초창기를 연상케 한다. 적폐청산은 인적쇄신을 동반한다. 우리 측 사람이나 정치이념을 같이하는 사람을 등용하기 위한 청산이라면 그것은 또 다른 적폐를 만든다. 법의 기준보다 높은 애국적 양심과 인륜적 도덕은 더 중요하다. 국가를 위해 판단하며 국민의 행복을 염원하는 노력과 행위는 정권이 바뀌더라도 적폐가 아니다. 애국적 실수보다 정권을 위한 적폐청산은 더 잘못된 방법이다.
언제 끝날지 기약없는 적폐청산… 이제는 국민들이 의심의 눈초리
대화 협력 아량 갖춘 정부 되기를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
새해 들어 국민의 관심과 기대를 모았던 가장 큰 행사는 대통령의 시정연설과 기자회견이었다. 그러나 반응을 보아하니 벌써 국민의 관심에서 사라진 것 같다. 정치권은 이를 연중행사의 하나로 간과해 버린다.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회의감과 실망스러움을 느꼈을 것이다. “우리가 다 잘할 테니까 믿고 따르라”는 자세였다.대통령과 정부의 선택과 판단은 역사적 동일성과 일관성을 부정하는 것 같았다. 여당 지도부의 발언은 국가와 국민을 위하기보단 정권을 옹호하고 지지하는 데 있었다. 그들이 야당에 있었을 때는 용납할 수 없는 불의와 사회악이라고 공박했던 사건들이 집권 후에는 정당시되는 것이 보통이다. 국가와 진실을 위한 행위를 한 공직자들이라고 칭찬했던 사람들을 집권 후에는 불법과 반국가적 질서 파괴자라고 고소한다. 정의는 국가와 민족을 위한 가치이지 정권에 따라 바뀌는 도구가 아니다. 동일한 사건이 우리에게 유리하면 정의이고 불리하면 불의와 악이라는 논리는 성립되지 못한다. 국민의 선택과 가치판단의 기준은 윤리적 규범과 역사적 전통에 따른다. 한 정권의 의도대로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구체적인 문제도 그렇다.
지금의 민노총도 장단점이 있다. 그러나 국민은 모든 노조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양보도 하고 협력할 줄 아는 애국적 공동체이기를 원한다. 민노총이 촛불시위의 공로를 보상받기 원하며 기업체 내의 세습적인 인사행정까지 강요한다면 그것은 집단 이기주의적 발상이다. 비(非)노조원에게 압력을 가하기까지 한다면 법치사회에서는 허용할 수 없는 사회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가 민노총과 동지애를 갖고 국민에게 임한다면 국민은 대통령에 대한 불신과 정부에 대한 거리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도 그렇다. 교육은 항상 보다 선한 방향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특정한 목표를 위한 일방적인 과정과 방법은 금물이다. 종교나 정치이념을 위한 교육에 치우치면 인간의 자유로운 창조성을 약화시키거나 잃게 된다. 그런데 주변의 전교조 활동을 보면 교육의 보편적 가치보다는 주어진 정치이념을 위한 노조 활동을 앞세운다. 정신적 가치의 획일성과 교육적 가치의 평준화는 교육 자체를 불행과 파국으로 이끌 수 있다. 나치 독일과 공산주의 교육이 사회를 병들게 한 원인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정부가 교육을 행정규정에 맞추기 위해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면 정신문화의 육성과 발전을 저해할 뿐 아니라 민족의 정신문화를 병들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교육은 정부의 후원은 필요하나 통제를 받아서는 안 된다.
그래도 국민은 우리 정부와 함께하기를 원한다. 대한민국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정부는 독선적인 사고로 국민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된다. 대화하고 협력하며, 전문 분야에 속하는 국가적 과제들은 그 분야의 지도자들에게 맡기고 후원할 수 있는 아량을 갖춰야 한다. 정권은 5년이지만 국민생활은 100년 지속되어야 한다. 국민의 자유와 행복까지 정부가 위임 맡는 선진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