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칼럼

[김형석 칼럼]3·1운동 휴머니즘이 미래의 원동력이다

bindol 2022. 11. 12. 08:53

[김형석 칼럼]3·1운동 휴머니즘이 미래의 원동력이다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
입력 2019-03-14 03:00업데이트 2019-03-14 03:00
 
민족-국가의 절실함 깨달은 사건, 교육 경제 등 사회변혁 도화선
다가올 미래는 더 새로운 차원… 인간애 정신 되살려 해답 찾아야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
모든 역사적 사건에는 의미가 있다. 과거를 뒤로하고 새로운 미래를 창출하는 발전적 변화다. 올해로 3·1운동 100주년을 맞았다. 지난 한 세기를 성찰하면서 앞으로 한 세기를 어떻게 이끌어가야 하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3·1운동을 계기로 혁신적 변화를 가능케 한 것은 ‘생존 단위’가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그전까지는 삶의 단위가 ‘나와 가정’이 전부였으나 전 국민적 봉기를 치르면서 생존을 위해서는 ‘민족과 국가’가 먼저이면서 절대적이라는 각오를 하게 됐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유와 독립이 절체절명의 과제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가장 시급한 의무는 민족의 성장을 위한 교육이었다. 몇천 년 동안 이루지 못했던 교육부흥운동이 자발적으로 일어났다. 기독교회와 선교사들의 업적도 대단했다. 교육이 곧 자립의 길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교육의 열기는 광복과 6·25전쟁을 겪으면서 더 활발해졌다. 지금은 선진국 대열에 참여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교육 다음의 문제는 절대 빈곤을 자력으로 극복하는 것이다. 그 해결을 위해서는 절대다수의 국민이 얼마나 일을 사랑하고 스스로 행복해지는 임무를 감당하는가에 달려 있다. 6·25전쟁 뒤의 처참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경제성장의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1981년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국민의 의식구조를 조사한 결과를 보았다. 먹을 것이 있고 생활이 안정돼도 일을 하겠느냐는 항목에, 국민의 86%가 “일을 하겠다”고 답한 여론조사였다. 국민의 의식 변화로 인해 절대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오늘날 경제의 원동력이 됐다. 우리는 국내에서 느끼지 못하고 지냈다. 지금은 세계 여러 나라가 그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당시에 한국을 방문했던 호주의 밥 호크 총리가 귀국해서 한국 경제의 장래를 높이 평가해 “일본 다음의 경제국이 될 것”이라는 찬사를 보냈을 정도였다. 학문 예술을 비롯한 문화 분야의 성장은 꾸준히 계속됐다. 정부의 간섭이 적었기 때문에 여러 분야에서 업적을 남겼다. 젊은이들의 창의 발랄한 활동은 국제적 정평을 얻고 있다. 오래지 않아 노벨문학상에 도전할 기회도 생겼으면 좋겠다.

 
100여 년 동안 많은 시련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치는 국제적 민주국가로 인정받고 있다. 물론 갈 길이 멀리 남아있다. 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기대했던 민주정치가 정체되거나 후퇴하는 상황이 벌어지고는 있으나 점차 개선될 것으로 믿는다. 국민의 민주역량이 정부의 이념정치보다 앞서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실정을 봐왔고 최근 중국이 추진하는 공산당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우리 국민은 없을 정도가 됐다.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또 하나의 사회적 업적에 따르는 혜택이 생겼다면 의료봉사의 보급과 기술적 성장이다. 3·1운동 당시만 해도 의료 혜택의 국민화는 미미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 분야에서도 우리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다.

이런 과정을 국내에서 밟고 있는 동안 주변 세계는 더 큰 변화를 계속했다. 현 정부나 정치계를 보면 우물 안 개구리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20세기의 가장 큰 발전적 변화는 공산주의 사상과 공산주의 국가의 몰락이다. 그 결과로 정치적 좌우는 사라지고 진보와 보수로 정립됐다. 지금은 보수와 진보가 공존 상태를 넘어 더 소망스러운 장래를 위해 ‘열린사회로 가는가, 폐쇄사회로 후퇴하는가’가 세계적 과제가 됐다. 공산국가를 비롯한 폐쇄사회는 스스로의 종말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북한의 현실에서 그 현상을 보고 있다.

 
물론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컴퓨터와 지능기계의 개발과 그 결과는 세계사를 새로운 차원으로 바꿔 놓을지 모른다. 열린사회를 위해서는 미래에 다가오는 과제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그 구체적인 해답을 내리기는 힘들다. 그러나 두세 가지 책임 있는 기대는 있어야 한다. 첫째는 정권주도적인 과거를 버리고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민주주의로 재출발하는 책임이다. 둘째는 21세기에는 아시아에서 어느 국가가 정신문화의 선도권을 차지하느냐이다. 인문학적 사유와 성장을 위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그 과제들을 가능케 하는 원천은 근대역사의 원동력이 되었던 휴머니즘의 육성이다. 자유와 인간애의 기본권이다. 창조력을 포기해서도 안 되지만 인간애를 배제한 정의와 평등은 존립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