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논리가 만든 불행한 근현대사… 사실과 진실에 기반한 국민 선택 중요
先代의 과오만 남기면 민족의 미래 없다
그런 현실은 우리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근대화 과정을 주도해 온 서구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경험주의 전통을 육성 발전시켜 온 앵글로색슨 사회를 제외한 대륙의 국가들도 비슷한 과정을 밟았다. 그들의 합리주의 정신은 수용할 수 있다. 그러나 독일의 관념론적 변증법은 세계적 공감을 받기 어렵다. 대표적인 헤겔의 철학을 가리켜 ‘그는 거대한 관념의 궁전을 건축했으나 자신은 그 안에 살지 못하고 입구에 있는 수위실에 거주했다’는 혹평도 있었다. 실용주의자들은 관념철학자들을 ‘집을 땅에서 지어 올리지 않고 하늘에서 지어 내려온다’고 풍자했다.
그런 정신적 관념론을 물질적 기반의 상층구조로 전환시키고 모든 사회생활의 기초는 경제로부터 출발해 물질적 가치로 환원한다고 주장한 사상가가 카를 마르크스였다. 경제적 생산성 여하에 따라 사회구조는 변한다고 보았다. 그 생산과 소비의 최선의 방법은 공동생산과 소비 사회라고 주장했다. 당시 자본주의의 갈등과 모순을 해소시키는 유토피아로 가는 과정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경제사회학적 변증론이 모순논리를 따르기 때문에 우리가 우려하는 흑백논리와 차이가 없었다는 점이다. 역사적 현실을 개혁하는 목적을 위해서도 중간이 배제된 대립과 투쟁의 과정을 택했다. 권력을 앞세우는 모순논리는 투쟁과 때로는 혁명까지도 감행하게 된다. 계급투쟁과 문화혁명이 그런 위험성을 안고 있다.
그러나 흑백보다 더 진취적인 공산주의도 경제수준이 높은 사회로는 확장되지 못했다. 자유경제를 신봉하는 경험주의 국가가 언제나 국민 생활의 상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한때 마르크스 사상에 도취되는 듯했으나 지금 공산주의를 따르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든 사회가 됐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에 와서 그런 과거를 왜 문제 삼느냐고 말한다. 그런 이들이 자기모순과 당착에 빠져 있다. 우리는 북한 동포와 공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념과 정권의 차이는 해소하기 어려워도 동포애를 인간애로 승화시키며 자유와 휴머니즘이 넘치는 통일은 민족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무엇인가. 모두가 인정하는 사회과학의 기본과 원칙을 지키고 따라야 한다. ‘사실을 사실대로 보아 진실을 찾고 그 진실을 토대로 가치판단을 내리는 책임이다.’ 사실을 은폐하거나 왜곡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사회악이다. 우리가 언론의 자유를 존중하며 지성인들의 양심을 믿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들과 같이 정치적 이념을 위해 진실을 가리거나 허위를 진실로 가장하는 것은 애국적 행위를 배반하는 범죄가 된다.
가치판단이란 무엇인가.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한 선택이다. 이때 기준이 되는 것은 국민 다수의 선택이다. 정부는 그런 국민의 선택을 외면하거나 거부해서는 안 된다. 국민 전체의 애국심은 물론 정치인들도 정권욕을 앞세우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국민을 정치적 목적의 수단으로 삼는 정권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실에서 진실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판단은 우리 모두의 의무면서 권리다. 극히 상식적인 예를 들어보자.
춘원 이광수는 친일을 했다. 그러나 같은 시대를 산 우리들은 그의 문학작품 등을 통해 영향을 받았으나 그를 따라 친일파가 된 일은 없었다. 그의 변절이 안타까울 뿐이다. 박정희는 반민주적 독재를 했다. 그러나 그의 집권기간에 국민이 절대빈곤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오늘의 경제기반을 구축하는 업적을 남겼다. 우리 자신들보다도 국제적인 긍정평가가 더 높았다. 나는 교육계의 몇몇 선배들이 친일파 명단에 들어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그 당시 그들의 열성적인 교육활동이 없었다면 자주독립의 저력을 육성할 수 있었을까를 의심한다.
先代의 과오만 남기면 민족의 미래 없다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
우리의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흑백논리적 의식구조와 사고방식이 얼마나 큰 불행의 요소였는지 의심하지 않는다. 사실 현실에는 완전한 흑과 백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중간의 회색이 있을 뿐이다. 밝은 회색과 짙은 회색의 차이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서로를 회색분자라고 배척한다. 자신이 그중의 한 사람이면서. 사회생활에는 절대적 가치가 없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그런 현실은 우리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근대화 과정을 주도해 온 서구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경험주의 전통을 육성 발전시켜 온 앵글로색슨 사회를 제외한 대륙의 국가들도 비슷한 과정을 밟았다. 그들의 합리주의 정신은 수용할 수 있다. 그러나 독일의 관념론적 변증법은 세계적 공감을 받기 어렵다. 대표적인 헤겔의 철학을 가리켜 ‘그는 거대한 관념의 궁전을 건축했으나 자신은 그 안에 살지 못하고 입구에 있는 수위실에 거주했다’는 혹평도 있었다. 실용주의자들은 관념철학자들을 ‘집을 땅에서 지어 올리지 않고 하늘에서 지어 내려온다’고 풍자했다.
그런 정신적 관념론을 물질적 기반의 상층구조로 전환시키고 모든 사회생활의 기초는 경제로부터 출발해 물질적 가치로 환원한다고 주장한 사상가가 카를 마르크스였다. 경제적 생산성 여하에 따라 사회구조는 변한다고 보았다. 그 생산과 소비의 최선의 방법은 공동생산과 소비 사회라고 주장했다. 당시 자본주의의 갈등과 모순을 해소시키는 유토피아로 가는 과정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경제사회학적 변증론이 모순논리를 따르기 때문에 우리가 우려하는 흑백논리와 차이가 없었다는 점이다. 역사적 현실을 개혁하는 목적을 위해서도 중간이 배제된 대립과 투쟁의 과정을 택했다. 권력을 앞세우는 모순논리는 투쟁과 때로는 혁명까지도 감행하게 된다. 계급투쟁과 문화혁명이 그런 위험성을 안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에 와서 그런 과거를 왜 문제 삼느냐고 말한다. 그런 이들이 자기모순과 당착에 빠져 있다. 우리는 북한 동포와 공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념과 정권의 차이는 해소하기 어려워도 동포애를 인간애로 승화시키며 자유와 휴머니즘이 넘치는 통일은 민족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무엇인가. 모두가 인정하는 사회과학의 기본과 원칙을 지키고 따라야 한다. ‘사실을 사실대로 보아 진실을 찾고 그 진실을 토대로 가치판단을 내리는 책임이다.’ 사실을 은폐하거나 왜곡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사회악이다. 우리가 언론의 자유를 존중하며 지성인들의 양심을 믿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들과 같이 정치적 이념을 위해 진실을 가리거나 허위를 진실로 가장하는 것은 애국적 행위를 배반하는 범죄가 된다.
문제는 사실에서 진실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판단은 우리 모두의 의무면서 권리다. 극히 상식적인 예를 들어보자.
춘원 이광수는 친일을 했다. 그러나 같은 시대를 산 우리들은 그의 문학작품 등을 통해 영향을 받았으나 그를 따라 친일파가 된 일은 없었다. 그의 변절이 안타까울 뿐이다. 박정희는 반민주적 독재를 했다. 그러나 그의 집권기간에 국민이 절대빈곤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오늘의 경제기반을 구축하는 업적을 남겼다. 우리 자신들보다도 국제적인 긍정평가가 더 높았다. 나는 교육계의 몇몇 선배들이 친일파 명단에 들어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그 당시 그들의 열성적인 교육활동이 없었다면 자주독립의 저력을 육성할 수 있었을까를 의심한다.
모든 공적은 다 지워버리고 부정적 의미만 남긴다면 어떻게 민족이 성장할 수 있겠는가. 사실에 대한 가치판단은 국민의 몫이다. 어떤 정권이나 이념적 편 가르기에 주어진 과제가 아니다.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