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칼럼

“東亞와 동갑내기… 내 꿈은 더 좋은 나라”

bindol 2022. 11. 13. 06:43

“東亞와 동갑내기… 내 꿈은 더 좋은 나라”

입력 2020-06-18 03:00업데이트 2020-12-03 10:29
 
본보 100주년 ‘동감_백년인연’
김형석 교수, 중앙학교 역사관 찾아
“풍요로운 민족국가 위해 교육헌신
제게 용기 준 스승은 도산-인촌선생… 민족의식-교육이 대한민국 원동력”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왼쪽)가 17일 서울 종로구 중앙학교 역사관에서 김종필 중앙고 교장의 안내로 1926년 6·10만세운동으로 검거된 중앙고등보통학교 학생에 대한 동아일보 기사를 보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민족정신과 더불어 동아일보와 100년을 함께 살았네요.”

‘현역 100세 교육자’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17일 오전 젊은 시절 7년간(1947∼1954) 교사와 교감으로 재직했던 서울 종로구 중앙중·고교 내 중앙학교 역사관에서 이렇게 말했다. 동아일보와 김 교수는 1920년 4월 함께 태어난 동갑내기다. 그에게 동아일보는 다니던 학교(평양 숭실중)가 일제의 신사 참배 강요로 폐교 위기에 놓였다는 소식을 알려줬고, 참배를 피해 한때 자퇴한 그가 평양부립도서관에서 홀로 공부할 때 벗이 됐던 신문이었다.

김 교수는 연세대 철학과 교수로 있으며 급격한 성장 속에 메말라 가는 정신적 가치를 담은 책 50여 권을 썼고, 퇴임 뒤에도 강연을 통해 사회교육에 앞장서 왔다. 김 교수는 1960년 7월 7일 첫 기고 이후 현재도 본보에 칼럼을 게재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소중한 인연을 맺은 이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동감_백년 인연’의 일환으로 김 교수에 대한 감사 행사를 이날 열었다.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은 함께 역사관을 둘러본 후 오찬을 같이하며 김 교수의 본보 칼럼과 인터뷰, 사진 등을 모은 책자 ‘백년의 동반자’와 창간 100주년 기념 오브제 ‘동아백년 파랑새’ 등을 증정했다.

중앙중·고교 역사관에서 ‘자랑스러운 중앙인’ 소개를 둘러보면서 김 교수는 “내 제자구먼” 하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김 교수는 저서 ‘백 년을 살아보니’에서 “(중앙중·고교 재직 시절이) 평생에서 가장 학생들과 사랑을 나눈 기간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김 교수와 만난 중앙고 3학년 이시현 군은 “중앙학교의 큰 스승을 뵙게 돼 영광”이라고 했다.

본보 100주년 캠페인 ‘꿈이 뭐예요?’와 관련해 김 교수의 꿈을 물었다. 김 교수의 평생 꿈은 ‘해방된 한민족이 보란 듯이 민족국가를 세우고 세계에서도 모범적이고 풍요롭게 사는 것’이었다.

 
“해방된 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교육에 일생을 바치자고 결심했지요. 저에게 용기와 교훈을 준 스승이 도산 안창호와 인촌 김성수 선생이었습니다. 이제는 속으로 ‘선생님, 못 보시고 돌아가셨는데 바라시던 대로 요즘 우리나라 잘삽니다’라고 합니다. 나 죽고 난 50년 뒤에 내 제자들이 ‘더 좋은 나라가 됐다’고 했으면 좋겠습니다.”

김 교수는 오늘날 대한민국을 만든 원동력은 민족의식과 교육 열망이었다고 했다.

“한국이라는 큰 나무의 뿌리는 암만 봐도 3·1운동 같아요. 어머니가 갓난 나를 업고 교회에 갔는데, 만세운동으로 남편을 잃은 아내들이 울지 않더라는 거예요. 민족의식과 ‘배워서 힘을 길러야 한다’는 의식이 3·1운동에서 싹터 그 힘으로 독립해 나라를 세울 수 있었고, 전쟁의 참화를 겪고 나서도 오늘날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거지요.”

김 교수는 이날도 ‘100세 청년’이었다. “나는 늙었다는 생각을 안 합니다. 항상 미래를 계획합니다. 여러분, 지난날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앞으로 얼마든지 갈 길이 있어요. 멀리, 높이 갈 사람은 짐을 많이 가져가면 안 돼요. 필요 없는 욕심은 버려야 합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