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물과 한국인

bindol 2022. 11. 15. 08:55

[이규태 코너] 물과 한국인

조선일보
입력 2003.01.03 19:40
 
 
 
 

서당 뒷산 으슥한 응달에 먹물샘으로 불리는 샘이 있었다. 응달에서
검게 보인다 해서 먹물샘이 아니다. 훈장은 반드시 이 물을 길어다 먹을
갈게 했으며 이 먹물로 쓴 글씨와 다른 물로 먹을 갈아 쓴 글씨를 훈장은
귀신처럼 식별해냈다. 이끼 냄새를 맡고 식별한다느니, 광채가 다른
것으로 식별한다느니 말들이 있었지만, 이웃 고을 서당들에서도 그
먹물샘 물을 길어 가곤 했던 기억이 난다. 글씨의 광채까지 좌우했던
한국의 물빛이었다.

조선조 초의 선비 성석인은 그 집안에 정자를 지어놓고 차 끓여 마시는
것으로 낙을 삼았는데 단골손님으로 소를 타고 내왕하는
이행(李荇)이라는 선비가 있었다. 어느 날 이행이 차맛을 보더니
다동(茶童)을 불러 "너 이 차에 두 물을 부었구나" 하는 것이었다.
이에 다동은 차탕기가 기울어져 물을 좀 쏟았기로 다른 물로 채워
끓였다고 고백했던 것이다. 가공할 만한 물맛의 감식안이 아닐 수 없다.
율곡(栗谷) 선생은 물맛에서 무겁고 가볍고 하는 경중(輕重)을 가려
경수(輕水)는 물리고 마시지 않았다 하며 우남양(禹南陽)은 암물(雌水)
수물(雄水)을 가려 암물은 마시지 않았다.

옛날 좀 산다는 집들에서는 장독대 곁에 물독대를 따로 두고 물을 가려
썼다. 입춘날 내린 빗물 받아둔 것이 입춘수(立春水)로 잠들기 전 부부가
한 그릇씩 마시고 자면 아이를 밴다는 사랑의 묘약이다. 또 입동 열흘
후에 내린 빗물 받아둔 것이 액우수(液雨水)로 이 물로 약을 달이면
약효가 배가되는 것으로 알았고, 섣달 납일(臘日)에 내린 눈을 받아 녹인
납설수(臘雪水)에 곡식 씨알을 담았다 뿌리면 병충해가 생기지 않는다는
등 물을 두고 문화가 이처럼 고도로 발달한 나라도 드물 것이다. 한양의
물장수들은 인왕산에서 흐르는 백호수, 삼청동에서 흐르는 청룡수,
남산에서 흐르는 주작수, 그리고 한강의 상하좌우의 가장 복판에 흐르는
우중수(牛重水)를 따로 지고 다니며 팔았는데 청룡수는 술 빚는 데,
우중수는 장 담그는 데, 백호수는 약 달이는 데 하는 식으로 골라 썼으며
물값도 차등이 심했다.

유엔이 올해를 「신선한 물의 해」로 선정했다. 이런 추세면 20년
후에는 지구 3분의 1이 물 기갈로 고통받을 것이라 하니 이를 예방하고
물의 소중함을 뒤돌아보는 캠페인을 벌인다 하여 물의 민족으로서
현격하게 벌어진 고금의 거리를 가늠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