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잇는 바브엘만데브 해협은 상대적으로 우리에겐 덜 알려져 있다. 이 해협의 별칭은 아라비아어로 ‘눈물의 문’이다. 동쪽 예멘, 서쪽 에리트레아와 지부티, 남쪽 소말리아가 해협에서 마주 본다. 수에즈 운하를 지나 홍해를 거쳐서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통과하면 아덴만에 당도한다. 아덴만을 벗어나면 아라비아해가 펼쳐지는데 크게 보면 모두 인도양이다.
위험도가 높은 해협이다. 2011년 1월 주얼리호가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되었다. ‘아덴만의 여명’ 작전으로 인질 구출이란 쾌거를 이루었지만, 그만큼 위험한 바다다. 소말리아인을 국제사회가 혹독하게 비판하지만 어찌 보면 가난에 찌든 그들 처지에서 해적은 엄연히 하나의 직업이자 비즈니스일 뿐이다.
바브엘만데브 해협은 홍해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문명의 여명기에 홍해는 유럽 문명과 아시아, 아프리카가 만나는 교차로였다. 오늘날 지중해에서 홍해로 넘어가려면 수에즈 운하를 이용한다. 수에즈는 1869년 개통하였으니 불과 153년 됐다. 긴 인류사에 비한다면 최근의 일이다. 수에즈 개통은 희망봉 여정이 생략되는 커다란 사건이었다. 수에즈 지협(地峽)와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통과해야 비로소 지중해와 인도양이 이어졌다. 지협과 해협이 동시에 작동하게 된 중요한 계기였다.
수에즈 운하는 일찍이 고대부터 시도되었다. 수에즈 근처에서 분홍색 화강암 비석 파편이 발견되었다. 비문은 고대 페르시아어, 엘람어, 바빌로니아어, 이집트어 등 다국적 언어다. 아케메네스 왕조의 다리우스 대제가 명령하여 나일강에서 페르시아가 시작되는 바다까지 운하를 파고, 이집트에서 출발한 배가 이 운하를 통해 페르시아로 왔다고 기록했다.
다리우스의 운하를 통과하여 홍해를 거쳐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항해한 흥미로운 인간이 있다. 기원전 6세기 후반에서 5세기 초반 그리스인 스킬락스는 다리우스 1세의 명으로 인더스강까지 항해했다. 인도 정복을 위한 일종의 ‘스파이 탐사’였다. 실제로 아케메네스 왕조는 기원전 6세기에서 4세기까지 인도 아대륙 북서부를 정복했다.
고대 세계에서 지중해와 인도양이 연결되는 데 홍해가 절대적이었다. 홍해는 일종의 기다란 파이프처럼 북쪽으로 수에즈 지협, 남쪽으로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창구로 하여 서로 다른 문명 세계를 연결했다. 통시적으로 볼 때 이 지협과 해협을 하나의 유기적 연동장치로 파악하는 것이 옳다. 한쪽의 긴장은 다른 한쪽에도 영향을 주면서 지협과 해협의 지정학적 연계성을 알려주는 중이다.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니 동방박사가 찾아왔다. 아기 예수에게 경배하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몰약과 유향은 소말리아, 수단, 에티오피아, 소코트라 등 아프리카 동부와 아라비아 남부에서 산출되었다. 카라반에 실려 북상하거나 배에 실려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통과했다. 이집트 문명도 끊임없이 홍해를 이용하여 동방과 소통했다. 핫셉수트 여왕이 원정대를 ‘황금의 나라’ 푼트까지 보낸 기록이 벽화에 남아있다. 푼트는 소말리아로 비정된다.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통과했을 것이다. 당시로서는 이 해협을 통과한다는 사실 자체가 어마어마한 사건이었다. 전혀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이었기 때문이다.
홍해에는 유수의 국제 무역 항구 베레니카가 있었다.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통과하여 아라비아 남부와 인도, 스리랑카를 연결하는 국제 거점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절에 알렉산드리아에 살던 그리스 상인은 해협을 통과하여 인도까지 여행하고 ‘에리트레아해 항해서’란 중요한 기록을 남겼다. 에티오피아에는 강력한 해상 왕국이자 기독교 왕국이었던 악숨이 있었다. 악숨의 홍해 항구 아둘리스에서 출발한 상선이 해협을 통과하여 멀리 스리랑카까지 출현했다. 심지어 스리랑카에 에티오피아 용병이 다수 존재했을 정도로 ‘인력 수출’도 마다하지 않았다.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통하여 인도의 향신료가 로마까지 수입되었다. 소말리아 상인도 국제 무역 시장에서 주역으로 활약했다. 오늘날 소말리아인이 해적이란 오명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실제로 이들은 천부적인 해상 상인의 후예이기도 하다. 다만 그들이 물려받은 해양력을 엉뚱한 해적질에 쓰는 중이다.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벗어나자 만나는 ‘아프리카의 뿔’ 소말리아 반도가 위험 좌표가 된 지 오래다. 소말리아 건너편 예멘에는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이 총포를 날리고 있다. 후티 반군과 이란이 모두 시아파에 속하고, 사우디아라비아가 수니파란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멘 땅에는 한때 시바의 여왕 왕국이 있었다. 시바 여왕과 솔로몬 왕의 홍해와 지중해를 오고 간 비화는 성경에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시바 왕국은 ‘황금의 땅’으로 물산이 풍부하고 국제 무역이 왕성했다. 해협을 건너온 물산이 ‘천년의 항구’ 아덴에 집결했다. 중국 상선도 아덴으로 속속 들어왔다.
오늘날 중국은 지부티에 항구 조차권을 획득했다. 일대일로의 동아프리카 교두보를 바브엘만데브 해협에 설정한 것이다. 소말리아는 여전히 악순환을 겪고 있고, 예멘의 내전은 그칠 줄 모르는 등 불과 26㎞의 좁은 해협은 언제나 뜨겁다. 이제는 몰약과 유황 대신에 석유를 실은 유조선이 흘러가는 전략적 수로다. 한국 해군이 작전을 펼쳐야 할 정도로 우리와 무관한 해협이 아니다. 모카항에서 선적한 모카커피와 에티오피아의 커피도 한국인의 식탁 위에 올라오는 중이다. 우리가 바브엘만데브 해협에 관심을 돌려야 할 이유가 수십 가지도 넘는다.
'칼럼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정훈 칼럼] 이태원의 ‘정치 무당’, 대장동의 ‘돈 저수지’ (0) | 2022.11.18 |
---|---|
[朝鮮칼럼 The Column] ‘낡은 진보’, 그들이 변해야 나라가 산다 (0) | 2022.11.16 |
[朝鮮칼럼 The Column]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0) | 2022.11.14 |
[박제균 칼럼]참사를 수단으로 삼지 않는 예의 (0) | 2022.11.14 |
[사설] 실체에 다가서는 ‘대장동 그분’ 의혹 (0) | 2022.1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