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남한산성 행궁
조선왕조 500여년 동안 가장 아픈 45일로 기억되고 있는 역사의
현장―남한산성 행궁 73칸이 복원되었다. 병자호란으로 강화도로 피란길
떠난 인조가 남대문을 벗어나자 타고 있던 말이 갑자기 땀을 흘리며
버티어 서서 나아가려 하지 않았다. 이에 인조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
말머리를 남한산성쪽으로 돌렸던 것이다. 후에 알고 보니 오랑캐 장수가
임금이 강화도로 피란갈 줄 알고 길목에 복병을 묻어두고 기다렸다는
것이다. 동궁의 말잡이를 비롯, 수행원이 모두 도망쳐 임금님은 등에
업혀 오르면서 발에 동상까지 걸렸던 산성길은 고행길이었다.
산성에 들어 성을 한 바퀴 돌아본 인조는 행궁 마당에 백관 장수들을
불러놓고 그 유명한 빗속의 행궁 유시를 했다. 「나는 싸인 성안에
있는데 안으로는 믿을 만한 형세가 없고 밖으로는 개미새끼 한 마리의
응원도 없으니 내가 손수 갑옷을 입고 군사를 거느려 싸우겠다」는 이
연설에 장수들은 목놓아 울고 하늘도 울어 비를 내렸다고 했다. 부슬비
끝에 추워져 병사들 옷이 모두 얼자 임금은 행궁 앞뜰에 나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나의 잘못이지 장졸들이 무슨 죄입니까」고 하늘에
빌고 옷가지 방석 이불을 내리자 백관(百官)이 이에 따랐다.
인조는 행궁에서 옷을 벗고 자지 못했으며 밥상에도 닭다리 하나 오른
것이 고작이었다. 이에 「입성했을 때는 닭소리가 많더니 지금은 들리지
않으니 나의 밥상 때문이구나. 앞으로 닭고기를 올리지 말라」 했던
행궁의 침식(寢食)이었다. 행궁 남쪽 정자나무에 까치가 와서 집을 짓자
남작길조(南鵲吉兆)라 하여 백관이 하례를 올렸으니 믿을 건 미신밖에
없었던 행궁 45일이었다.
행궁에서 맞바로 보이는 망월대에 오랑캐가 세운 「招降」이라는
항복권유 깃발이 나부끼는데 행궁 앞뜰에서 최명길(崔鳴吉)이 작성한
화의문(和議文)을 척화신인 김상헌(金尙憲)이 찢는다. 최명길이 나라에는
이런 글을 쓰는 사람도 있고 찢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는 명언을 남긴
행궁비사다. 그리고 인조는 붉은 곤룡포도 못 입고 신복(臣伏)을 뜻하는
남색옷으로 정문 아닌 서문으로 나아가 청 태종 앞에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린다. 그 행궁의 외형만 말고, 보고 나오면 주체의식이 강화되게끔
내용 가꾸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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